[논평・성명][논평-260815] 과연 2030년에 걸맞은 정책인가? 시대에 역행하는 '건강가정기본법', 이젠 폐지할 때이다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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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2030년에 걸맞는 정책인가?

시대에 역행하는 ‘건강가정기본법’, 이젠 폐지할 때이다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논평




지난 6월 9일 성평등가족부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하 제5차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비전 아래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5년간의 가족정책 추진 방향과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성평등가족부는 1인 가구, 이주배경가족의 증가와 새로운 취약·위기가족의 등장, 돌봄 부담 심화 등 가족을 둘러싼 사회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돌봄과 생활의 균형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가 돌봄·일생활균형·가족포용 정책 강화로 가족정책의 새 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하는 가운데, 내용 이전에 우선 왜 이번에도 ‘건강가정’을 앞세운 가족정책 기본계획이 발표되어야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차 기본계획에서 이미 사회와 가족의 변동을 직시하고 인권위 권고(2005)를 수용해 ‘건강가정’이라는 명칭을 가치중립적으로 바꾸고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규정한 제3조 정의와 실제 생활과는 상관없이  “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만을 가족범위로 한정한  민법 779조를 전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성평등가족부는 어떤 제도적 진전도 없이 스스로의 선언을 뒤집고 다시 구시대적 프레임으로 회귀했다. 이는 ‘성평등’을 실현할 책무를 저버리는 명백한 책임회피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사회보장기본계획, 아동정책기본계획, 장애인정책종합계획 등 대부분의 법정 국가계획은 가치중립적 명칭으로 정책영역을 기술하지만, 유독 가족정책은 ‘건강’이라는 강한 규범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왔다. 의료의 영역을 넘어 건강의 개념은 우생학과 결합하여 ‘건강하지 않은’ 자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며 ‘정상’을 가늠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작동해 온 역사가 있다.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한국 국적자를 ‘건강’하고 재생산 ‘자격’이 있는 시민으로 확인하는 반면, 빈곤층, 장애인, 성소수자, 제3세계 이주노동자, 특정 인종과 종교인 등은 ‘건강하지 않은’ 비정상이나 사회적 결함으로 간주하여 강제 불임, 시설 수용, 교정, 양육권과 재생산권의 박탈, 시민권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어왔다.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에도 건강의 우생학적 개념이 가족정책영역으로 들어와 생애모델과 친밀성의 관계를 정상/비정상, 건강함/취약함의 이분법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우려한 대로 지금까지 가족정책의 기조를 장악해왔다. 그러나 건강이 절대적 가치가 되면 건강하지 않은 개인은 실패로 간주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방법을 마련하기 어렵다. 국가가 개인과 가족의 ‘건강’, ‘정상’ 여부를 판별할 때 빈곤, 폭력, 돌봄 공백 같은 구조적 문제는 ‘가족 내부의 불화’나 ‘건강하지 못한 병리적 현상’, ‘개인과 가족의 역량 부족’으로 축소된다. 정책과제가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권리와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기보다 ‘가족 상담’, ‘부모 교육’ 같은 전문가의 교정적 개입에 치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우생학적 건강이 강조될수록 돌봄은 돌봄제공자에서 돌봄필요자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전형화된다. 하지만 인간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삶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아프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관계에서 서로 돌봄을 주고받지만, 마치 의존자는 돌보지 않고 돌봄자는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이분화하여 일방향의 돌봄을 강조해 왔다. 취약한 가족의 발굴과 이들에 대한 돌봄으로 일관하는 정책에서는 돌봄관계가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이며 통제적인 보호와 개입과 동일어가 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생학적·병리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건강’을 가족지원의 기본법에서 평등과 비차별, 인간다움, 존엄, 행복 등을 포괄하는 핵심가치로 위치시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앞으로의 사회변동과 가족변화는 더욱 빨라지며 시민의 생애모델과 친밀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사회적 조건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십 년째 ‘혈연과 혼인의 가족’, ‘건강가정과 가족기능’이라는 구시대적 프레임으로 법 밖의 가족들과 돌봄관계를 배제하거나 ‘취약가족’으로 낙인찍는 이 계획이 다양한 친밀성과 서로돌봄 관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일 수 있겠는가? 시민들의 인식과 실천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2030년이라는 미래 시대가 무색하게 거꾸로 퇴행하고 있는 제5차 기본계획에 대해 다음의 질문을 제기한다.



1. 제5차 기본계획에서 호명하는 ‘모든’ 가족은 누구인가?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행복한 사회”, “모든 가족의 기본적인 삶 보장”, “모든 가족을 위한 포용적 지원 강화”, “변화하는 정책수요에 대응해 모든 가족의 기본생활의 질 보장 필요”, “모든 가족을 위한 출생등록될 권리 보장”, “모든 가족을 위한 여가·문화 환경 조성”, “일하며 돌보는 모든 가족을 위한 지원 강화” 등 제5차 기본계획은 비전과 목표, 정책 이름에서 드러나듯 “모든 가족”을 위한 정책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가족이 누구인지, 정말 ‘모든’ 가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인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4차와 5차 기본계획 모두 ‘다양한 가족의 포용’과 “모든 가족”과 함께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전체적인 기조와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큰 격차가 있다. 제4차 기본계획은 기존 법체계가 다양한 가족의 삶과 관계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정책의 사각지대와 차별적 인식을 유발한다는 점을 근거로, 혼인과 혈연에 매이지 않고 서로 돌봄하는 친밀한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며 이를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정의와 민법의 가족 규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명시했다. 특히 대안적 가족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언·신탁제도의 발굴·홍보, 법률혼·혈연 이외의 서로 돌보는 대안적 가족구성원 간 최소한의 권리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 기존 법이 대안적 가족관계를 포괄하기 위한 중장기적 제도 개선이라는 구체적 과제를 제시했다. 가족을 규정해 온 법적 경계를 문제 삼고 기존 법적 가족 밖의 관계를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물론 실망스럽게도 제4차 계획은 실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당시 사회적 쟁점이었던 가족다양성 의제를 정부가 수용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제5차 기본계획은 가족다양성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문제의식 자체가 퇴행하였다. 이는 4차 계획의 정책과제를 정치적 이유로 유보하고 회피했던 지난 정부의 여성가족부의 궤적과 연결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5차 계획에서 가족다양성의 의제는 한부모가족, 1인 가구, 이주배경가족, 가족돌봄청년, 고립·은둔가족, 경계선지능 가족 등 새로운 정책수요를 찾아내고 새롭게 등장한 취약가족들에게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가족의 변화를 고려한 포용적 제도 기반 마련’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관련된 법·제도 정비”를 말하지만, 그 내용은 미혼모·부 자녀의 출생신고, 가족센터의 1인 가구 지원 법적 근거 마련,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서비스 이용 확대 등에 그친다. 협소한 가족 개념을 그대로 둔 채 서비스가 필요한 집단을 계속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가족다양성 의제가 다양한 가족들의 권리 확보와 제도적 인정의 문제에서 가족서비스 지원의 다각화로 축소된 것이다.


성평등가족부의 퇴행적 입장은 제5차 기본계획에서 가족구성권의 의제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더욱 뚜렷하다. 가족환경분석에서 언급했듯이, 2020년 조사에서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70%이고 비친족 가구가 현저하게 늘어나는 등 시민의식과 대안적인 돌봄 관계가 확장되고 있음에도, 2030년을 전망하는 계획에서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 개정, 대안적 가족관계의 제도화는 여전히 “개정 필요성 검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했던 4차 기본계획과 달리, “국회에서 관련 논의 시 합리적 검토 의견 제시”, “비혼 동거·출산 등 법률혼·혈연 이외의 대안적 가족관계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 지원”이라는 형식적인 언급에 그친다.


제4차 기본계획에 관한 평가에서 스스로 “가족의 개념 확대 및 가족 구성 선택권 등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 및 입법화는 미흡했다”고 인정한 만큼, 제5차 계획에서는 가족제도 재구성과 가족구성권 보장을 더 진전시켜 생활동반자등록법·혼인평등·차별금지법 제정 등 입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어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가 있으면 그때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정책과제일 수 있는가? 가족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무색하게 성평등가족부는 사회적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않겠다고 회피하고 뒷걸음치는 모양새이다.


친밀성의 관계와 서로돌봄의 삶의 방식이 이미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도 협소한 가족 개념을 유지한 채 사용하는 ‘모든 가족을 위한’이라는 정책목표는 생색내기의 구호에 불과하다. 일상생활과 관련한 240개 이상의 법들이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규정에 근거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족의 법적 규정이 만들어내는 것은 법 밖의 가족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다. 혼인하지 않은 파트너, 성소수자 커플, 친구나 다양한 비혈연 생활공동체와 대안적 가족공동체처럼 서로를 지속적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관계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들은 ‘모든 가족’에 들어갈 수 없다. 가족의 법적 규정이 그대로 존치된 채 선언되는 ‘모든 가족’의 구호는 모두 나쁜 거짓말인 셈이다.



2. ‘취약성’은 특정 집단의 속성인가?


가족유형별 선별적 지원이 특정 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비판에 따라,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가족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가족을 포괄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계획 전반에서 반복되는 “취약”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방식은 ‘취약가족’을 더욱 세분화하여 위험군으로 새롭게 발굴·관리하는 데 맞춰져 있다. 기존 취약가족 범주에 더해 “고립·은둔청년”, “가족돌봄청년”, “생애말기 돌봄필요자”, “경계선지능인” 등을 새로운 정책대상으로 호명하며 지원 확대를 강조한다.


물론 정책의 지원대상과 범위, 수준을 확대하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선택한 단어에 반영된 성평등가족부의 관점이다. 정책은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를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반영하고 실현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1차에서 5차에 이르기까지 “취약계층”, “취약가족”, “취약집단”을 반복적으로 호명하며 취약성을 특정 개인이나 가족이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처럼 간주해왔다. 이러한 기조에서 정책의 지원 확대는 시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고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는 국가의 책무가 아니라, 취약가족을 ‘발굴'의 대상으로 만들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개입을 강화하는 성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가족과 집단의 정체성처럼 사용되는 ‘취약성’은 특정 개인이나 가족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구조적 조건이다. 가족돌봄청년은 과도한 가족돌봄 책임과 빈약한 공공돌봄 체계가 만들어낸 취약한 위치에 놓이며, 이주배경가족 역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불안정한 체류자격, 저임금 노동, 가족결합권의 제약 등 제도적·문화적 불평등이 교차하는 조건에 의해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다시 말해 취약성은 장애, 노화, 가족형태, 인종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비장애주의와 능력주의, 젠더와 계급, 인종과 이주, 국적 등 사회적 분할이 교차하면서 축적되는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취약가족’의 호명을 남발하여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시혜적인 개입과 관리의 대상으로 세밀하게 분류하는 정책이 어떻게 보편적 가족정책이 될 수 있겠는가?



3. 돌봄정의 없는 '사회적 돌봄'은 가능한가?


사회적 돌봄의 확대’ 혹은 ‘가족돌봄의 사회화’는 제1차 기본계획부터 제시된 핵심 정책목표였으며, 제5차 기본계획에서도 중심축을 이룬다. 한국 사회의 가족환경과 돌봄 환경이 2006년 이후 크게 변화했음에도, 돌봄 책임을 여전히 가족역할로 전제하고 국가는 돌봄기능이 약해진 가족을 보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제5차 기본계획 역시 국가의 돌봄 책임이나 돌봄의 공공성을 확대하기보다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을 지원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최근 강조된 지역사회통합돌봄도 사례 발굴과 서비스 연계를 효율화하는 전달체계에 주목할 뿐, 평등한 돌봄권의 보장과 돌봄 책임의 사회적 분배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돌봄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서비스 확대를 넘어 돌봄을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이해하는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젠더화된 돌봄노동뿐만 아니라 인종주의, 제국주의, 비장애주의, 인간중심주의가 교차하며 글로벌한 돌봄부정의를 생산하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한다. 가족돌봄을 규범화하고 공공돌봄의 공백을 저임금 이주노동으로 메우는 현실, 돌봄을 시설화하고 돌봄받는 사람을 ‘취약계층’으로 주변화하는 정책,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돌봄의 수준과 돌봄권이 차등화되는 시장중심의 구조 등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는 돌봄부정의이다.


따라서 ‘사회적 돌봄’은 단순히 서비스 공급을 확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돌봄의 책임을 국가·시장·가족·지역사회가 어떠한 원칙 아래 분담할 것인지, 돌봄노동을 가로지르는 구조적 불평등의 조건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질문하는 돌봄정의의 문제이다. 그러나 제5차 계획은 여전히 가족돌봄을 우선 전제하고 국가는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물며, 돌봄의 공공성 확대보다 민간영역의 효율성을 지원하는 방향에 집중할 뿐이다. 시장의 관점과 제국주의적 관점이 투영되어 국제적 돌봄부정의를 양산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나 공공돌봄의 후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회서비스원의 기능 축소 등 중요한 쟁점이 되는 돌봄정책에 대해서도 성평등가족부는 외면하고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논의가 돌봄정의와 돌봄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돌봄정책의 주무부서인 성평등가족부는 사회변화와 가족변동에 부응하여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도모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돌봄, 정의로운 돌봄이 정책의 지향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담론과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는가? 사회적 돌봄은 공급의 측면보다 돌봄의 가치와 돌봄정의의 관점에서 돌봄의 공공성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적 돌봄의 확충은 정당화될 수 없다.



4. AI 디지털 기술은 돌봄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있는가?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가족서비스 전반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5차 계획은 AI 기반 복지위기 예측모델을 활용한 복지사각지대 발굴, AI 기반 정보시스템을 통한 상담과 사례관리 연계,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위기아동 모니터링과 노인돌봄서비스 확대 등 디지털 기반 서비스의 확충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가족과 돌봄 서비스의 특수성과 윤리적 쟁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정부의 디지털 전환 기조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AI 기반 복지행정은 건강, 소득, 고용, 가족관계, 복지수급, 돌봄이력, 상담기록 등 민감한 개인정보의 광범위한 수집과 연계·분석을 전제로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전산화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데이터로 재구성하고 예측하는 통치방식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개인정보의 수집과 결합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과 오류를 어떻게 검증하고 통제할 것인지, 자동화된 의사결정에서 시민의 설명요구권과 이의제기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 데이터 활용의 민주적 통제, 디지털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효율성과 혁신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기술 낙관주의에 가깝다.


무엇보다 데이터화되는 대상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결합·이용되고 어떤 기준으로 해석되는지 알기 어렵고, 그 정보에 기초한 판정과 개입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도 어렵다. 당사자의 구체적인 삶과 맥락은 지워진 채 위험지표와 데이터의 묶음으로 환원되며, 디지털 문해력과 정보접근 능력의 차이는 서비스 접근과 이용에서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다. 자신의 정보를 확인·수정하거나 알고리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 역시 충분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기술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더라도 오히려 이용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가족서비스는 돌봄을 지원하는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데이터화를 통해서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행정기술로 작동하면서 시민의 일상에 대한 국가의 감시와 관리, 통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 위험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AI가 생애과정에서 닥친 위험을 포착하고, 필요한 정보를 개인맞춤으로 제공하며, 어려움을 상담하고 심지어 ‘돌봄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기술낙관주의가 오히려 시민의 결속과 유대의 의지, 서로돌봄의 책임과 윤리와 그리고 시민의 삶에 대한 공동체와 사회, 국가의 책무와 책임성에 너무 쉬운 면책권을 주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2026년, 이제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할 때이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한국 사회의 가족과 친밀성의 관계, 돌봄의 실천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여전히 결혼과 출산, 아동양육과 부모부양, 가족돌봄을 규범화하고  ‘건강하고 독립적인 몸’을 전제하는 소위, 이성애주의적 정상생애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가족’을 외치지만 협소한 법적 가족에 머물며, ‘가족다양성’은 가족제도와 시민권의 재구성 과제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발굴하여 지원 대상목록에 추가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사회적 돌봄 역시 가족의 역할과 기능을 전제한 채 이를 보완하는 시장 중심의 서비스 공급에 머물고, AI와 디지털 기술은 시민의 삶을 데이터화하여 분류·예측·관리하는 행정기술로 어떤 방어막도 없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과 제5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의 근본적인 한계와 오류의 출발점은 우생학적인 ‘건강’의 개념과 ‘협소한 가족’ 정의를 오히려 정상화하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주의적이며 정상가족이데올로기와 국가의 관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제4차 기본계획조차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심지어 이보다 더 후퇴한 제5차 기본계획을 2030년까지의 가족정책으로 확정한 성평등가족부의 책임은 무겁다. 각 부처의 가족 관련 정책을 단순히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과 돌봄정의의 관점에서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한 책무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에 안일하게 대처하며 복지부동하는 성평등가족부의 각성과 전격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다음을 요구한다.


첫째, 건강가정기본법을 폐지하라! 2030년까지의 사회변화와 가족변동을 더 이상 ‘건강가정’이라는, 시대에 뒤처진 우생학적인 법적 틀에 담아낼 수 없다. 국가가 시민의 삶을 정상/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취약가족, 취약계층’으로 부르는 것도 더는 참을 수 없다. 이제는 가족정책을 특정한 가족형태와 오래된 가족신화를 정상화하고 유지, 강화하려는 협소한 분야정책의 틀에 묶어둘 수 없다. ‘모든 가족’을 위한 가족정책은 이 땅에서 정주하는 사람들과  체류인의 생존권과 돌봄권, 관계를 형성하고 해체할 권리를 포함한 가족구성권, 노동과 주거,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교차적인 사회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가족을 규정하는 민법 제779조를 폐지하고, 혼인평등을 위해 민법을 개정하라! 생활동반자등록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모든 가족의 포용’은 누구나 가족구성권과 평등권을 침해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정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사회적 조건이 기본적으로 확보되어야 실현가능한 목표이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논쟁으로 남겨놓고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론장을 열고 입법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돌봄은 가족부담 경감과 서비스 공급 확대를 넘어 돌봄정의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돌봄노동을 확대하려는 돌봄 사업을 중단하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과 사회권,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며 국가의 돌봄 책임과 공공돌봄을 확대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 ‘취약가족’의 호명을 중단하고 시혜적인 국가지원이 아닌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서의 돌봄과 서로돌봄의 가치를 반영하는 돌봄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가족·돌봄 영역의 AI와 디지털 정책은 기술도입을 앞세우기보다 디지털 인권과 디지털 정의를 중심으로 느린 속도로 세밀하게 재검토하라! 시민사회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환류할 수 있는 공론장과 윤리적 체계를 구축하여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민주적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영역의 디지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사람들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디지털 접근성과 이용 역량의 차이가 정보에 대한 통제와 정책 결정과정의 참여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2026년 8월 15일

가족구성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