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에 관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입장]
‘정상가족 밖‘에서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전진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생활동반자법 국회 첫 발의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과 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있고, 상호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들은 2000년대 이후 호주제 폐지 운동을 통해서 공적인 의제로 등장해 왔습니다. 2007년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동반자 등록법이 공약으로 등장한 것은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에서 정상가족 너머의 삶을 함께 만들어내고자 했던 퀴어/비혼여성/장애여성등 여러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정상가족 밖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사회적으로 ‘불온한’ 비정상시민/가족들의 오랜 전진과 저항의 과정입니다.
현재 기존 가족을 넘어서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찾아가는 흐름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애초부터 박탈당한 소수자뿐만 아니라 가족제도의 위기,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공존의 위기를 경험하는 많은 시민들의 삶의 한 가운데에 존재합니다. 시민들은 누구와 의지하면서, 어떻게 돌봄을 주고 받고, 어디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무거운 물음과 책무를 새롭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삶과 죽음에 걸쳐서 가족이 담당해온 -돌봄, 부양, 상호협조-등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고, 기존 가족을 통해서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시민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유대와 돌봄망에 대한 필요는 위기가족, 취약가족만의 돌봄공백이 아니라 ‘모두의 의제’이며, 삶이 이어지고 재생산 되는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인 의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폐쇄적인 가족제도를 넘어서 개인들이 다양한 이름과, 방식으로 실천하는 실질적인 돌봄, 상호협조, 경제적인 협력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과 존중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따라서 어떤 가족상황에 놓여지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고립되지 않고, 동등한 시민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인 의제입니다.
그 첫 걸음이 생활동반자법 제정입니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혈연이나 이성간의 법적 결혼 중심으로 작동해 온 가족제도에 개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중심의 복지체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부양의무제폐지, 법적인 가족단위로만 주어지는 사회권의 차별 해소, 삶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민법 779조의 폐지 등 가족제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큰 흐름들과 맞물려야 합니다. 또한, 법적으로 동반자관계가 인정되는 것뿐만 아니라 연대인제도로서 내가 지정한 1인이 의료, 돌봄, 장례등에서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상호의존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사회변화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모두를 위한 평등한 관계성, 돌봄이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결혼과 동거, 이성간 파트너십과 동성간 파트너십, 성애적 관계와 우정의 관계 등을 차등적으로 구분하고 어느 한쪽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에도 저항합니다. 또한, 도구적인 인구정책을 벗어나, 어떠한 가족형태 안에서도 아동의 권리가 인정되고, 아동이 누구랑 함께 살아가더라도 충분한 돌봄과 국가의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불평등한 가족제도를 변혁해야만 합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배우자, 부모, 자녀 순으로 모든 관계의 서열이 규정되고, 인생에서 중요한 관계를 국가가 이미 지정해버리는 관계의 위계를 해체하면서 다양한 생활 동반자의 권리가 존중될 때 시민들간의 유대나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함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제도와 무관하게, 성애적인 관계와 무관하게, 인척 관계와 무관하게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돌봄과 상호협조를 실천하는 동반자 관계들이 차별에 연루되지 않도록 국가의 역할을 강제하는 법입니다.
21대 국회가 1년 채 남지 않았지만 현실화 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 계획을 내놓아야 합니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가족상황차별 해소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여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족제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해서 내가 누구와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존중되고, 시민들이 함께 상호의존하는 다양한 관계와 돌봄망이 우리 사회를 다시 만드는 방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 5. 14.
가족구성권연구소
2023. 5. 14.
가족구성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