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후기]2024년 9월 월례포럼: 이한숙, <가족주의의 이주민 활용과 차별>

2024-11-09

2024년 9월 월례포럼 후기


제목ㅣ <가족주의의 이주민 활용과 차별>

강연ㅣ 이한숙 소장

일시ㅣ 2024년 9월 9일 19:00

장소ㅣ 커뮤니티 늘봄

기록ㅣ 김경서 운영위원 (얄리)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지난 9월, 이주와인권연구소에 계신 이한숙 선생님을 초대하여 <가족주의의 이주민 활용과 차별>이라는 제목으로 월례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주민을 인구정책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현실에 대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고민을 보다 심층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0. 배경과 시작

포럼은 이한숙 선생님이 몸담고 계신 <이주와인권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하시며 시작되었습니다. 96년도, 부산에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그 즈음에 전국 곳곳에 지원단체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부산 지역에서 활동가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해당 일정을 통해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고토부키 쵸에 가시게 되었는데요, 그곳에는 마을 블록 안에 닭장같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 미등록 노동자들은 해당 지역에서 오래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의 서러운 이야기와 광경을 목격하면서 들었던 생각, 한국도 그럴 것이라는,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도 똑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그 생각이 연구소의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이한숙 선생님은 2005년에 열게 된 <이주와인권연구소>가 왜 연구소라는 형식이 활동가와 전문가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기 위해 선택되었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현장을 잘 알지 못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정책 개선안이 나오는 것이 그때에도 여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주와인권연구소>는 현장 활동가들과의 신뢰와 연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장활동가들이 1차 상담을 하다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경우 연구소로 가져오고 그것이 자연스레 연구소의 활동 주제가 됩니다. 주로 농업과 어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사회보장 쪽은 네트워크 단위들이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가 부산에 있는데 활동을 부산에서만 하는 건 아니며, 수도권과 지역 간의 단절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 이주민 현황과 신분

현재 체류 외국인은 250만명이 넘어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명이 모이면 1명은 한국 국적자가 아닌 것이지요. 이들의 신분은 체류자격에 따라 결정됩니다. 기본적으로 체류자격이 있으면 등록, 없으면 미등록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 체류자격은 법무부의 안내 매뉴얼에 따라 판정됩니다. 이 자격에 따라 사람마다 머물 수 있는 기간, 자격 변경 여부, 가족 동반 가능 여부, 취업 가능 여부, 사회보장 범위 등등이 다릅니다. 세부 분류는 270여개이지만 디테일한 부분이 매일 바뀌고, 법무부 재량에 따라 또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지원그룹들조차 체류자격분류에 따라 지원방식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한숙 선생님은 이러한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권리는 분류체계에 의해 나뉘어질 수 없고, 노동하러 온 사람도 여타 다른 사람처럼 일상을 꾸려간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주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가 아닌 ‘노동하는 이주민’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2. 가족동반, 왜 허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EBS 프로그램 <아빠 찾아 삼만리>는 과거 <엄마 찾아 삼만리>를 패러디 하여 제목 붙인 프로그램입니다.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버지’ 몰래,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 감동을 자아내는 내용입니다. 전형적인 신파 서사를 띄고 있습니다. 이한숙 선생님은 이 프로그램의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아버지’의 본국은 가난해야 하고 한국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며 ‘어머니’는 본국에서 조부모와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야 합니다.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일을 돕는 착한 아이들이어야 합니다. 이 조건들은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그대로 비추어줍니다. 그리고 그 편견의 배경에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주민들을 데려와 시청률을 확보하면서도 그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짚어내지 않습니다. 

이한숙 선생님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모습이 한국사회가 이주민을 착취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이 이주민들을 시청률 확보에 써먹듯이, 정부는 이주민들을 경제에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오로지 싼값에 노동력을 ‘수입’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그로 인해 ‘노동하는 이주민’이 ‘단신’의 ‘단기’ 취업 노동자이기를 바랍니다. 이들에게는 ‘돌봄’과 복지를 필요로 하는 아동과 노인 등의 비경제활동인구는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인 셈입니다. 

그러나 사실 경제활동인구, 즉 ‘단신’의 ‘단기’ 노동자들 또한 한 명, 한 명의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본국의 ‘돌봄’을 통해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부는 애써 지우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에 살면서 필요로 하는 ‘돌봄’, 즉 경제적 손실도 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돌봄’에 대한 편견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전지구적 규모의 착취와 연결될 수밖에 된다는 점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이러한 관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정책입니다. 


3. 동반가족의 종속적 지위

이한숙 선생님은 한국의 뿌리깊은 정상가족주의로 인해 동반가족이 허용되는 경우조차도 이주민들의 삶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체류자격을 이야기 할 때는 주 체류자격과 종 체류자격을 따로 봅니다. 법무부 내에서 쓰는 단어입니다. 이중 후자는 법적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취업활동은 불가능하고, 성년이 되면 박탈됩니다. 당연히 주 체류자격이 상실되면 종 체류자격은 따라서 상실되고요. 자연스럽게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주 체류자격자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의 불편함과 빈곤, 가정 내 불평등이 야기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 체류자격자에 의한 가정폭력, 성폭력이 발생하여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심지어는 입양아들의 삶까지 어렵게 만듭니다. 입양을 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재외동포의 경우, 혈연을 근거로 주는 비자이기 때문에 법적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입양된 자녀에게는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4. 노골적인 차별, 출생등록과 사회보장

이한숙 선생님은 출생등록과 사회보장에서 특히나 비국민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출생등록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음으로써 실효가 발생합니다. ‘가족’이 있어야만, ‘출생’신고를 하여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외국국적 아동에게 국내 출생등록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국민’에 한정된 출생등록과 법적 혼인관계 내의 ‘정상가족’을 전제로 한 제도로 인해 많은 미등록 아동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아(棄兒)’의 경우에만 가족관계 없는 출생등록이 가능하여, 현장에서는 유기될 경우에 한정한다면 아무 흔적도 없이 유기된 경우가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조는 사회보장 차별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은 오로지 국민을 대상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일반조세를 통해 비용을 충당하는 공공부조와 사회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이주민을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능한 것은 결혼한 이주민 중에서도 한국 국적자를 임신 중이거나 양육 또는 부양하고 있는 사람 혹은 난민인정자 등의 극히 예외적인 경우 뿐입니다. 가입자의 기여금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의 경우 적용범위를 넓혀 왔었지만 이마저도 세세하고 치명적인 차별적 규정들로 인해 이주민 가입자들로 하여금 서비스를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이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마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이라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사회는 이주민을, 기존의 정상가족주의적 구조와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면서도 이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조차 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이주민 차별은 그야말로 한국사회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그리고 촘촘하게 정상가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이한숙 선생님은 여기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노동하지 못하는’ 이주민의 존재 자체가 법무부가 말하는 ‘도덕적 해이’라면,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상호의존과 연대를 사회적 가치로 설정하고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

이한숙 선생님의 발표 이후 연구소 구성원들의 수많은 질문과 이에 뒤따른 논의들이 오갔습니다. 포럼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초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생애와 퀴어적 불평등을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되었는데, 이주민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또한 실제로 가족구성권연구소가 가족관계등록법 때문에 출발했다는 점을 말하며 신분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구성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을 짚어주신 것 같아 오늘의 자리가 너무나 반갑다는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어떤 참여자는 존재를 분리하는 시스템, 이것이 단순히 특정한 이주민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을 잔혹하리만치 분류하도록 상상케하는 가족제도 자체의 매커니즘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가족제도가 사실은 남녀라는 성별이분법 체제 속에서 공고하게 쌓아올려진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 내용과 같이 처참한 정책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주민 운동이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운동적 차원에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소회를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