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빛이 나는 솔로? 빛이 나는 비혼!

2023-10-08

빛이 나는 솔로? 빛이 나는 비혼!

박성주 사회문화부 차장, 신승원 기자 (2023.10.8.) | 대학신문  


연재 | 중장년 비혼의 삶과 사회 ①

결혼하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의 ‘비혼’은 결혼을 정상으로 상정하는 미혼이라는 개념과 다르게 결혼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비혼한다는 애들이 꼭 먼저 결혼하더라’ ‘막상 나이 들어보면 후회한다’라는 풍문이 익숙한 것을 보면 비혼의 삶이 불완전하다는 통념은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꿈꾸는 시점에서, 실제 비혼의 삶은 어떨까? 첫 번째 연재에서는 사회 곳곳의 중장년 비혼을 찾아 그들의 삶을 들어본다.


| 비혼 1세대를 조명하다

◇익숙해진 비혼, 변화하는 생애 모델 = 비혼은 이제 낯설지 않은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에서 보도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의 비중은 2012년에 비해 20.1%p나 감소해 36.4%를 기록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43.8%, 여자는 28.0%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가구원별 가구 구성비를 살펴봐도, 1인 가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5년에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주된 유형이 됐고, 3인 이상 가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에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부상하고 비혼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형성하는 주류적 생애 모델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통계청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발췌.


◇‘비혼 1세대’의 탄생 = 연구자들은 통상적으로 비혼을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한다. 성미애 교수(한국방송통신대 생활과학부)는 “1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거의 처음으로 비혼의 삶을 산 40~50대 중장년을, 2세대는 그다음 청년 세대인 20~30대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지은숙 연구원은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이 상승하고 여성의 고학력과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는 등 지금의 중장년 세대 중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라고 비혼 1세대의 등장 배경을 설명했다. 이때 당시에 활발했던 여성주의 의제와 정치 담론은 이런 사회적 흐름을 더욱 촉진했다. 지은숙 연구원은 “중장년 세대에게 비혼은 가부장제에 대한 반발과 함께 결혼을 중심으로 제도화된 생애과정 밖에서 이뤄지는 여성의 대안적 삶을 특정하는 젠더화된 개념이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비혼 1세대를 찾아서 = 비혼 2세대인 지금의 청년들과 달리 1세대인 중장년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삶이 당연했던 시대에 살아왔다. 지은숙 교수는 “지금의 중장년층은 처음으로 자발적 비혼이 증가하기 시작한 세대”라며 “결혼이 정해진 생애의 틀처럼 여겨지던 당시에 비혼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라고 중장년 비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짚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앞장서 비혼을 살아본 세대인 중장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비혼 1세대의 이야기, 비혼에 담긴 서사를 듣다

기자는 사회 곳곳에서 비혼자로 다채로운 삶을 꾸려가는 여섯 명의 중년을 만났다.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의 김용운 작가(47),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의 김진아 작가(48), 유튜브 채널 ‘친절한 무관심’의 김효송 크리에이터(41), 박정순 씨(간호사·51), 이은희 씨(사회복지사·48), 유튜브 채널 ‘윤민yunmin’의 윤민 크리에이터(40), 한지민 씨(무직·47)에게서 중장년층 비혼 1세대의 생생한 삶의 서사를 들어볼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은 인터뷰 답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


Q. 어떤 계기나 동기가 있어 비혼으로 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은희: 제가 비혼을 결심한 뚜렷한 계기는 어렸을 적의 기억 때문입니다. 옆집에 폭력적이고 무서운 아저씨가 살았는데 그 집 아이들이 가정폭력으로 괴로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가족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어릴 때부터 가정을 이루는 것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아동·청소년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불행하거나 힘들게 되는 이유 중 대부분이 가족이나 부모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일을 하면서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니 어렸을 때 했던 생각이 굳혀져 혼자 살기를 다짐했습니다.


박정순: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큽니다. 20대 때는 대학을 늦게 가서 오로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혼 생각이 없었고, 30대는 꿈꿨던 꿈을 이루는 시기였기에 시간이 없었고, 40대는 이제 와서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비혼으로 살게 됐어요.


김진아: 한 번 결혼해본 뒤 그 제도가 저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비혼으로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을 때, 저에게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집안의 노동, 남을 돌보는 일은 모두 제 역할로 돌아왔어요. 이런 제도에서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느꼈죠. 지금 제게 비혼은 운동도, 이념도, 주의도 아닌 그저 잘 맞는 삶의 방식입니다.


Q. 중장년 비혼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인식은 어떤가요?


김용운: 20대에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노총각이라는 눈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비혼을 삶의 한 방식으로 존중해준다고 느낍니다.


박정순: ‘혼밥’(혼자 밥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비혼도 이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친척도 잔소리하시지 않고 잘 받아들이세요.


윤민: 저는 크리에이터기 때문에 댓글을 확인해 보는데, 비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했음에도 문제가 있어 결혼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효송: 비혼의 삶이 국가에 이바지하지 않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여전히 있는 것 같고, 염려하는 댓글도 달립니다. 인구소멸이나 국가소멸에 기여한다는 부정적 댓글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Q. '결혼' 혹은 '가족제도'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으세요?


김진아: 결혼이라는 제도가 참 무섭습니다. 일단 결혼이라는 열차에 타면, 그 안에서 임신‒출산‒육아라는 루트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후진 없이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집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돌보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죠. 특히 중장년 세대에서 ‘결혼’은 곧 ‘출산’이었기 때문에 더 압박이 크게 다가와요. 저는 그러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 자아를 잃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 열차에서 내렸으니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자전거 타듯 세상을 구경하고, 제가 하고 싶은 돌봄(고양이 돌봄)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웃음)

결혼 열차에서 내려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김진아 작가.

 

Q. 비혼으로 살아갈 때 더욱 잘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박정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 커리어를 위해 정진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저는 간호사로서 해외에 의료 봉사 파견을 나갈 생각인데, 남편이나 아이가 없으니 이런 결정에 있어서 자유롭습니다.


김효송: 도전해보고 싶은 여러 분야에서 오로지 나만의 의사를 반영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삶의 주체가 오롯하게 ‘나’라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고, 외부의 어떤 요건으로 인한 희생이나 책임이 뒤따르지 않아서 개인의 삶으로만 놓고 본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한지민: 가족을 돌봐야 하면 시도하기 어려운 것들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비혼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 아니겠어요? 저는 시간이 될 때마다 프리다이빙을 하고, 콘서트도 다니고 골프나 수영 등 여러 취미생활도 자유롭게 즐기고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이런 것들을 누리기가 다소 어려운 것 같아요.


김용운: 경제권이 오롯이 저에게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제가 경제적 활동을 해서 번 돈을 제 마음대로 쓰기가 어려워요. 또 자녀를 키울 때 교육비도 들 것이고요. 그렇지만 혼자 살면 경제권을 두고 갈등의 여지가 없어서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과의 갈등을 가장 가까운 데서 겪는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웃음)

비혼으로 살 때의 장점을 말하고 있는 김용운 작가.

 

Q. 비혼 중장년으로 생활하시면서 힘든 점이나, 노후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사회 제도나 분위기에 있어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김용운: 나이가 들면 아플 때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고민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국가가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개개인을 도울 때라고 생각해요. 계속 억지로 가족제도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것 말고요. 이제는 비혼하는 사람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 나아가 삶의 다양성이 존중되면 좋겠습니다.


이은희: 비혼인 중장년은 복지나 사회적 안전망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사회복지제도들이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이뤄지다 보니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1인 가구로서는 받을 수 있는 복지가 현저히 적습니다. 결혼이나 가족의 유무를 기준으로 하기보다, 실질적으로 어려운 개인을 발굴하는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년 1인 가구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한지민: 중년 1인 가구는 나이가 들면서 사회와 동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중년 비혼 가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복지관 프로그램의 연령을 낮추는 방안 등을 생각해 봤어요.


김진아: 중년 여성 중에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비정규직도 많고요. 그렇게 주거와 경제적 지위에서 계속해서 밀리면 사회의 사각지대로 몰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해요.


박정순: 가족 단위가 가장 핵심적인 경제공동체로 여겨지다 보니 그 밖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아파트나 비혼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 등 주거 환경이 더욱 다양해지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주거를 온전히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런 부분에 대한 국가의 조력이 절실합니다.


 

비혼으로 사는 동기는 각각 다르겠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하고 소중한 비혼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거나 별나지 않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번 연재에서 만난 비혼 1세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음 연재에서는 각양각색의 물결로 만들어진 비혼이라는 파도가 드러내는 한국 사회 가족의 특징과 비혼의 어려움을 살핀다. 꿈틀대는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비혼인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사진: 손가윤 사진부장 yoonpat2701@snu.ac.kr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레이아웃: 구효주 편집기자 altlghzk@snu.ac.kr 


 

*바로잡습니다. 지난 2079호(10월 9일 자) 6면에 게재된 '빛이 나는 솔로? 빛이 나는 비혼!' 기사의 '가구원수별 가구 구성비, 2000~2022년' 인포그래픽에서 4인 가구의 수치를 '34.5%'에서 '13.8%'로 바로잡습니다. 인포그래픽 제작 과정 중 수치 표기가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인포그래픽 제작 과정에서 검토가 미흡했던 점을 사과드리며, 해당 기사는 인터넷 『대학신문』(snunews.com)에 고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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