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불화하는 불구들의 생존을 도모하는 복수의 미래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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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미래없음’을 정치화하기
왜 고립은 정치적인 의제일 수밖에 없는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시대이다. 국가는 단절된 사회, 고립된 사회 현상을 1인가구의 증가나, 저출산 현상과 쉽게 연결 짓고, 결혼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로 치환하면서 시민들이 왜 고립감을 느끼는지를 사회적인 의제로 두기보다는 국가의 미래적 위기로 배치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구위기, 돌봄위기, 가족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혼하면 1억원 준다’라고 공언하고 있고, ‘돌봄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안’을 정책수립으로 표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임대 주거정책에서 1인가구는 신혼부부들을 위해서 원룸 크기만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국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에서 고립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출을 통해서 집을 사는 방식의 정주성을 시민의 삶의 안정적인 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듯, 돌봄의 시장화, 주거복지의 금융화, 관계의 결혼화를 강화하는 국가 정책 앞에서 1인가구의 빈곤이나, 함께 정주할 수 있는 권리들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고, 고립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할 몫이 된다. 결국, 고립을 정치화해야 하는 이유는 고립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취약한 세계에 머물게 하는 국가의 정책으로 인한 결과임을 공적인 의제로 제기하는 것이다. 2023년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 1인가구의 모든 연령대가 1순위로 바라는 정책으로 주택안정지원(37.9%)을 꼽았고, 특히 30세 미만은 70.5%로 압도적으로 주거정책에 대한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한, 2-30대의 ‘비혼독신’ 선호도가 60% 이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였고, 동거에 대한 태도 또한 동일 연령에서 60%에 근접하고 있다.1) 이러한 삶의 방식의 변화 속에서 국가의 정책적인 방향이 새로운 유대와 사회적인 연대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족의 복원과 생애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일 때, 사회적인 불평등과 배제 속에서 정상궤도로부터 벗어난 시민들은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홀로> 책에서 다니엘 슈라이버는 왜 고립이 정치적인 의제인지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줄기차게 우리 사회가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을 펼치는 예언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외로움에 대한 투쟁을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증, 유대인 배척주의, 그리고 호모와 트랜스젠더와 이슬람 혐오에 대한 투쟁과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와 날마다 대규모로 사회적 고립을 유발하는 구조적 배제 현상에 함께 맞서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과장된 몸짓으로 경고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해답이라고 해봤자 거의 대부분 ‘핵가족’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소환하는 것이다.”2)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한 가족구성권연구소
시민들이 경험하는 고립의 핵심은 기존 가족 밖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불안과 연결되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애를 가질 권리가 취약한 불평등한 세계를 반영한다. 시민과 시민 ‘사이’의 삶들이 발명되고, 공-의존되는 사회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에서 이득이 되는 시민이며, 누구의 권리는 쉽게 침해되어도 되는지 ‘분리의 감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와 공존의 감각은 필연이 아니라 ‘취사선택’의 문제가 된다.
장경섭은 가족에게 생존과 의존을 일임해 온 ‘사회인프라형 가족주의’인 한국의 근대화는 ‘압축적 성장을 위한 압축적인 박탈’을 당연시해왔음을 제기하였다. 특히, 압축적인 박탈의 대상은 개발주의 정치경제에서 일회용 취급을 받는 계급, 시민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박탈된 것은 공동체, 문화이며, 시민과 시민의 삶을 이어주는 연대의 장치였음을 제기한다.3)
결국, 고립된 사회라는 것은 상실된 연대를 의미하며, 또다시 가족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하게 하는 가족지향적인 삶이 만들어 내는 존재론적 불안과 연결된다. 고립은 감정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의지처의 부재를 감각하는, 의지할 대상이 불확실한 삶의 조건과 연결된다. 억압적인 가족을 떠나서, 내가 누구랑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조건에 놓여질 때, 탈시설 이후에 지역에서 누구랑 함께 동료가 되어서 살아갈지 불예측적인 삶의 조건에 놓여질 때, 불안정한 일터에서 언제까지 생존할지 몰라서 또다시 억압적인 가족에게 의존할 지 모르는 ‘일시적인’, ‘임시적인’ 독립의 상태가 될 때,4) 이 세계에서 고립은 생존의 조건이자 불안정한 서로의 삶을 연결하는 집합적 정동이 된다.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 만들기
이렇듯, 단일한 생애, 동질적인 개인의 삶을 강제하는 사회와 불화하면서 생성되는 복수적 개인되기는 추상적인 개인들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가족모델, 단일한 생애를 삶의 지향점으로 간주하는 사회규범에 개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립을 정치화하는 것은 시민들이 경험하는 존재론적 불안이나 취약한 세계의 원인을 가족이 없는, 가족을 만들 수도 없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미래가 없는’ 시민들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권력에 개입하는 것이다.
국가는 미래없음을 자식도 없고, 가난하고, 결혼도 하지 않는 시민들이 증가하는 반사회적이고, 비생산적인 고립된 인구의 출현과 연결 짓는다. 이 사회의 많은 퀴어/트랜스, 장애, 여성들을 비롯해 몫이 없는 존재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토록 애쓰지만 여전히 빈곤, 낙인, 생존의 불안정성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미래없음을 감각한다. 필자가 현재 인터뷰를 통해서 만난 ftm 트랜스젠더 참여자는 성별정정이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한 유일한 출발이자, 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삶의 ‘완성’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성별정정 이후에 삶의 지향점의 부재를 감각하는 고립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허무한 마음이 많아요. 처음 호르몬을 맞을 때도 그랬었고 이 주사 한 대가 뭐라고 약간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막상 (성별)정정하고 나니까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지 약간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 아니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은 거죠. 이걸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건데 (…) 아무래도 정정을 해야 출발선에 서는 거니까 그것만을 바라보기가 쉬운데 그리고 정정이라도 하고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막상 그런 상태에서 막상 딱 끝나고 나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정만을 바라보면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고.”
지향할 삶의 방향성 부재를 쉽게 미래없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회에서, 고립을 정치화하는 것은 ‘난잡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며, 시민과 시민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정치화하는 급진적인 기획일 수밖에 없다.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만들기는 동질화되고, 규범적인 생애, 집단 안으로 개인의 삶을 밀어넣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삶, 몸, 관계가 사회적인 삶의 조건이 되는 복수적인 세계만들기의 과정이다. 즉, 질병, 장애, 퀴어/트랜스, 여성으로서 삶의 경험들이 자신의 것으로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경험이 사회의 조건이자, 함께 공-의존하는 삶의 토대로 기입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로마인의 언어에서 ‘살다’의 의미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죽다’의 의미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언급하면서 행위의 근본 조건은 보편적 인간(Man)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men)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거주의 조건이자, 인간의 조건임을 강조한다.5)
복수의 인간들이 함께 거주한다는 것은 공-의존하는 세계를 발명하는 것이며, 동질화된 개인의 삶과 이성애규범적인 생애모델을 퀴어링하는 퀴어가족정치의 장과 만난다. 퀴어가족정치는 기존의 가족질서로 귀속되는 삶, 관계의 위계가 아니라 가족의 정상성을 해체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의 돌봄과 서로의 삶을 발명하는 공-의존의 공통감각을 사회적인 의제로 정치화하는 것이다.6) 억압적인 혈연가족을 떠나서 살아남은 퀴어로서의 삶이 개인의 생애만이 아니라 공-의존의 생애과정이었음을 필자가 만난 연구참여자의 26번째 생일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제가 활동했을 때. 그때 26번째 생일 파티를 동료들이 준비해 준 거예요. 그때 펑펑 울었거든요. 근데 그때 울었던 게 뭐냐 하면 내가 살아서 그때 26살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26개 초가 이렇게 꽂혀 있는 거예요. 그 초를 보면서 진짜 엄청 많이 그러니까 눈물이 계속 쏟아지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이 생일상 못 받았겠지 동료들한테.”
위의 참여자에게 생일날의 하루는 추운 겨울날 가정폭력으로부터 목숨이 위험해서 나온 순간들, 추운 겨울 돈이 없어서 방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잤던 날들, 돈이 없어서 성노동이 당연한 선택으로 다가온 그날의 시간들이 쌓인 오늘이다. 이토록 취약한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예기치 않게 고통에 응답한 만남들, 돌봄관계들을 통해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출처: 코로나19 재난시기에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자”는 상호돌봄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전하는 홍보물. (원문링크)
아메드는 “퀴어가 세계를 퀴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퀴어가 세계를 초월”7)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규범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없는 정동들, 생존의 방식을 통해서 이 세계에 불평등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시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삶을 생성하는 것, 자신으로서 생존하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키고, 서로를 생존케 하는 공-의존의 생태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 만들기의 여정은 실패가 없는 균질적인 몸과 삶의 속도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뒤틀리고, 불일치되는 몸의 차이를 체화하는 ‘불구의 몸’들이 이어지는 돌봄의 장과 연결된다.8)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생산성’에 개입하는 불구의 미래는 단순히 이 사회에서 몫이 없는 삶에 할당된 자리가 아니라 기존 사회와의 급진적인 단절과 멸망을 꿈꾸는 불구의 정치의 장과 만난다.9)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는 이미 이곳에서 다른 방식의 생애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의 연합정치이며, 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지만 절대 이곳에서 사라질 수 없는, 끈질기게 이 사회와 불화하는 불온한 존재들의 삶이 새겨지고, 전수되는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세계의 복수성이며, 규범을 흔들면서 출현하는 퀴어성의 자리이다.
참고문헌
김순남,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 봄, 2022.
나영정, “[리뷰]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세계에서 가장 나중에 퇴장하는 불구의 미래를 그리며”, <오늘의 교육> 77호, 2024.
다니엘 슈라이버, 강명순 옮김, <홀로>, 바다출판사, 2023
사라 아메드, 시우 옮김, <감정의 문화정치>, 오월의 봄, 2024.
이소진,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오월의 봄, 2023.
이진희, “불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는 정치”, <문화과학> 115호, 2023.
장경섭, 박홍경 옮김,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 문학사상, 2023.
한나아렌트, 이진우․태정호 옮김,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데일리팝, “여가부 가족실태조사, 응답 1인가구 절반이 60대 이상.. 수요에 어긋난 정부 지원들”, 2024.4.18.
김순남 -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가족상황 차별을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여성학 박사를 마치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젠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며, 한국여성학회 이사로도 일한다. 지속적으로 국가가 강제하는 삶, 관계, 사회에 저항하면서 ‘퀴어한’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사회와 불화하는 불구들의 생존을 도모하는 복수의 미래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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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미래없음’을 정치화하기
왜 고립은 정치적인 의제일 수밖에 없는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시대이다. 국가는 단절된 사회, 고립된 사회 현상을 1인가구의 증가나, 저출산 현상과 쉽게 연결 짓고, 결혼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로 치환하면서 시민들이 왜 고립감을 느끼는지를 사회적인 의제로 두기보다는 국가의 미래적 위기로 배치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구위기, 돌봄위기, 가족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혼하면 1억원 준다’라고 공언하고 있고, ‘돌봄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안’을 정책수립으로 표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임대 주거정책에서 1인가구는 신혼부부들을 위해서 원룸 크기만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국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에서 고립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출을 통해서 집을 사는 방식의 정주성을 시민의 삶의 안정적인 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듯, 돌봄의 시장화, 주거복지의 금융화, 관계의 결혼화를 강화하는 국가 정책 앞에서 1인가구의 빈곤이나, 함께 정주할 수 있는 권리들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고, 고립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할 몫이 된다. 결국, 고립을 정치화해야 하는 이유는 고립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취약한 세계에 머물게 하는 국가의 정책으로 인한 결과임을 공적인 의제로 제기하는 것이다. 2023년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 1인가구의 모든 연령대가 1순위로 바라는 정책으로 주택안정지원(37.9%)을 꼽았고, 특히 30세 미만은 70.5%로 압도적으로 주거정책에 대한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한, 2-30대의 ‘비혼독신’ 선호도가 60% 이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였고, 동거에 대한 태도 또한 동일 연령에서 60%에 근접하고 있다.1) 이러한 삶의 방식의 변화 속에서 국가의 정책적인 방향이 새로운 유대와 사회적인 연대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족의 복원과 생애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일 때, 사회적인 불평등과 배제 속에서 정상궤도로부터 벗어난 시민들은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홀로> 책에서 다니엘 슈라이버는 왜 고립이 정치적인 의제인지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줄기차게 우리 사회가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을 펼치는 예언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외로움에 대한 투쟁을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증, 유대인 배척주의, 그리고 호모와 트랜스젠더와 이슬람 혐오에 대한 투쟁과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와 날마다 대규모로 사회적 고립을 유발하는 구조적 배제 현상에 함께 맞서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과장된 몸짓으로 경고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해답이라고 해봤자 거의 대부분 ‘핵가족’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소환하는 것이다.”2)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한 가족구성권연구소
시민들이 경험하는 고립의 핵심은 기존 가족 밖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불안과 연결되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애를 가질 권리가 취약한 불평등한 세계를 반영한다. 시민과 시민 ‘사이’의 삶들이 발명되고, 공-의존되는 사회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에서 이득이 되는 시민이며, 누구의 권리는 쉽게 침해되어도 되는지 ‘분리의 감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와 공존의 감각은 필연이 아니라 ‘취사선택’의 문제가 된다.
장경섭은 가족에게 생존과 의존을 일임해 온 ‘사회인프라형 가족주의’인 한국의 근대화는 ‘압축적 성장을 위한 압축적인 박탈’을 당연시해왔음을 제기하였다. 특히, 압축적인 박탈의 대상은 개발주의 정치경제에서 일회용 취급을 받는 계급, 시민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박탈된 것은 공동체, 문화이며, 시민과 시민의 삶을 이어주는 연대의 장치였음을 제기한다.3)
결국, 고립된 사회라는 것은 상실된 연대를 의미하며, 또다시 가족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하게 하는 가족지향적인 삶이 만들어 내는 존재론적 불안과 연결된다. 고립은 감정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의지처의 부재를 감각하는, 의지할 대상이 불확실한 삶의 조건과 연결된다. 억압적인 가족을 떠나서, 내가 누구랑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조건에 놓여질 때, 탈시설 이후에 지역에서 누구랑 함께 동료가 되어서 살아갈지 불예측적인 삶의 조건에 놓여질 때, 불안정한 일터에서 언제까지 생존할지 몰라서 또다시 억압적인 가족에게 의존할 지 모르는 ‘일시적인’, ‘임시적인’ 독립의 상태가 될 때,4) 이 세계에서 고립은 생존의 조건이자 불안정한 서로의 삶을 연결하는 집합적 정동이 된다.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 만들기
이렇듯, 단일한 생애, 동질적인 개인의 삶을 강제하는 사회와 불화하면서 생성되는 복수적 개인되기는 추상적인 개인들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가족모델, 단일한 생애를 삶의 지향점으로 간주하는 사회규범에 개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립을 정치화하는 것은 시민들이 경험하는 존재론적 불안이나 취약한 세계의 원인을 가족이 없는, 가족을 만들 수도 없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미래가 없는’ 시민들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권력에 개입하는 것이다.
국가는 미래없음을 자식도 없고, 가난하고, 결혼도 하지 않는 시민들이 증가하는 반사회적이고, 비생산적인 고립된 인구의 출현과 연결 짓는다. 이 사회의 많은 퀴어/트랜스, 장애, 여성들을 비롯해 몫이 없는 존재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토록 애쓰지만 여전히 빈곤, 낙인, 생존의 불안정성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미래없음을 감각한다. 필자가 현재 인터뷰를 통해서 만난 ftm 트랜스젠더 참여자는 성별정정이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한 유일한 출발이자, 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삶의 ‘완성’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성별정정 이후에 삶의 지향점의 부재를 감각하는 고립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허무한 마음이 많아요. 처음 호르몬을 맞을 때도 그랬었고 이 주사 한 대가 뭐라고 약간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막상 (성별)정정하고 나니까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지 약간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 아니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은 거죠. 이걸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건데 (…) 아무래도 정정을 해야 출발선에 서는 거니까 그것만을 바라보기가 쉬운데 그리고 정정이라도 하고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막상 그런 상태에서 막상 딱 끝나고 나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정만을 바라보면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고.”
지향할 삶의 방향성 부재를 쉽게 미래없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회에서, 고립을 정치화하는 것은 ‘난잡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며, 시민과 시민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정치화하는 급진적인 기획일 수밖에 없다.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만들기는 동질화되고, 규범적인 생애, 집단 안으로 개인의 삶을 밀어넣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삶, 몸, 관계가 사회적인 삶의 조건이 되는 복수적인 세계만들기의 과정이다. 즉, 질병, 장애, 퀴어/트랜스, 여성으로서 삶의 경험들이 자신의 것으로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경험이 사회의 조건이자, 함께 공-의존하는 삶의 토대로 기입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로마인의 언어에서 ‘살다’의 의미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죽다’의 의미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언급하면서 행위의 근본 조건은 보편적 인간(Man)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men)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거주의 조건이자, 인간의 조건임을 강조한다.5)
복수의 인간들이 함께 거주한다는 것은 공-의존하는 세계를 발명하는 것이며, 동질화된 개인의 삶과 이성애규범적인 생애모델을 퀴어링하는 퀴어가족정치의 장과 만난다. 퀴어가족정치는 기존의 가족질서로 귀속되는 삶, 관계의 위계가 아니라 가족의 정상성을 해체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의 돌봄과 서로의 삶을 발명하는 공-의존의 공통감각을 사회적인 의제로 정치화하는 것이다.6) 억압적인 혈연가족을 떠나서 살아남은 퀴어로서의 삶이 개인의 생애만이 아니라 공-의존의 생애과정이었음을 필자가 만난 연구참여자의 26번째 생일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제가 활동했을 때. 그때 26번째 생일 파티를 동료들이 준비해 준 거예요. 그때 펑펑 울었거든요. 근데 그때 울었던 게 뭐냐 하면 내가 살아서 그때 26살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26개 초가 이렇게 꽂혀 있는 거예요. 그 초를 보면서 진짜 엄청 많이 그러니까 눈물이 계속 쏟아지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이 생일상 못 받았겠지 동료들한테.”
위의 참여자에게 생일날의 하루는 추운 겨울날 가정폭력으로부터 목숨이 위험해서 나온 순간들, 추운 겨울 돈이 없어서 방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잤던 날들, 돈이 없어서 성노동이 당연한 선택으로 다가온 그날의 시간들이 쌓인 오늘이다. 이토록 취약한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예기치 않게 고통에 응답한 만남들, 돌봄관계들을 통해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출처: 코로나19 재난시기에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자”는 상호돌봄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전하는 홍보물. (원문링크)
아메드는 “퀴어가 세계를 퀴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퀴어가 세계를 초월”7)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규범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없는 정동들, 생존의 방식을 통해서 이 세계에 불평등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시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삶을 생성하는 것, 자신으로서 생존하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키고, 서로를 생존케 하는 공-의존의 생태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 만들기의 여정은 실패가 없는 균질적인 몸과 삶의 속도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뒤틀리고, 불일치되는 몸의 차이를 체화하는 ‘불구의 몸’들이 이어지는 돌봄의 장과 연결된다.8)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생산성’에 개입하는 불구의 미래는 단순히 이 사회에서 몫이 없는 삶에 할당된 자리가 아니라 기존 사회와의 급진적인 단절과 멸망을 꿈꾸는 불구의 정치의 장과 만난다.9) 복수적 개인, 복수적 생애는 이미 이곳에서 다른 방식의 생애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의 연합정치이며, 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지만 절대 이곳에서 사라질 수 없는, 끈질기게 이 사회와 불화하는 불온한 존재들의 삶이 새겨지고, 전수되는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세계의 복수성이며, 규범을 흔들면서 출현하는 퀴어성의 자리이다.
참고문헌
김순남,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 봄, 2022.
나영정, “[리뷰]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세계에서 가장 나중에 퇴장하는 불구의 미래를 그리며”, <오늘의 교육> 77호, 2024.
다니엘 슈라이버, 강명순 옮김, <홀로>, 바다출판사, 2023
사라 아메드, 시우 옮김, <감정의 문화정치>, 오월의 봄, 2024.
이소진,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오월의 봄, 2023.
이진희, “불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는 정치”, <문화과학> 115호, 2023.
장경섭, 박홍경 옮김,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 문학사상, 2023.
한나아렌트, 이진우․태정호 옮김,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데일리팝, “여가부 가족실태조사, 응답 1인가구 절반이 60대 이상.. 수요에 어긋난 정부 지원들”, 2024.4.18.
김순남 -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가족상황 차별을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여성학 박사를 마치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젠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며, 한국여성학회 이사로도 일한다. 지속적으로 국가가 강제하는 삶, 관계, 사회에 저항하면서 ‘퀴어한’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