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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의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비율은 33.6%로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1인 가구로 나타났다. 부부 등으로 구성된 1세대 가구는 3년 전보다 2.3% 증가했으며,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된 2세대 가구는 같은 기간 3.6% 감소했다. 가족의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대안가족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을 둘러싼 복지 문제에서 뜨거운 화두도 '다양성'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이유나 공동대표와 함께 가족의 의미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송시우 작가,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공동대표
송 |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어떤 단체인가요?
이 |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에 꾸려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 모임’이 전신이에요. 당시 호주제 폐지 이후의 가족 제도에 대한 상상력이 굉장히 필요한 시기였어요. 호주를 중심에 두지 않는 가족 제도에 대한 고민을 했던 거죠. 그러나 호주제 폐지와 동시에 건강가정기본법이 발의되면서 정상가족과 위기가족을 나누고, 이상적인 시민과 비정상적인 시민을 구분하는 가족제도가 계속 유지되었어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가족구성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절반을 넘어섰고, 결혼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증가하게 됐죠. 그렇다면 가족,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2019년에 가족구성권연구소로 전환하게 됐어요.
송 | 본인 소개도 해주세요.
이 | 저는 “정상적인 여성”이라는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남성과 결혼을 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교육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죠.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2012년부터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면서 비혼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살 수만은 없고, 살다 보면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이럴 때 누군가와 일정 기간 혹은 여생을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운동과 맞닿게 된 것 같아요. 2019년 연구소가 개소하면서 합류했어요.
송 | 다소 개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대표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가족 문제’는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 가족으로부터 자립해서 독립한 생활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원가족에게 돌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는 가족이 돌봤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요구가 사라지지 않아요. 저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기 좀 힘든 것 같아요. 은평구에 있는 ‘살림’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중증 질환에 걸렸거나 수술을 받은 조합원이 본인의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일 때 공동으로 모여서 쉬고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지는 공간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요. 저는 국가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 | 가족구성권 운동은 가족과 관련한 많은 이슈 중에서도 법·제도의 측면에 주목하는 시각으로 이해되는데요,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 |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우선시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법·제도에 집중했던 시기는 있었어요. 2019년 연구소가 발족하면서 법 밖의 가족이라고 해서 한국에 존재하는 법률 중 가족이 언급되고 있는 법률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어요. 주택, 복지, 장례, 보상, 의료, 상속 등 인간생활 전반에 관련된 많은 법이 가족을 정의하고, 가족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죠. 법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에서 규정되지 않은 관계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송 | 어떤 법이 바뀌면 좋을까요?
이 | 현실적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 개별법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남녀고용평등법」이에요. 돌봄 휴가와 돌봄 휴직이 제한된 범위의 법적 가족만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우선적으로 변경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카를 돌보는 사람도 있고 친구를 돌보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이 있잖아요? 두 번째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이 개정되면 좋겠어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최근 개정돼서 무연고자의 경우 내가 미리 정해둔 사람이 나의 장례를 주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장례 주관자로 지정할 수 있으려면 의료법이 같이 개정돼야 해요. 장례를 치르려면 사망진단서를 떼야 하는데 사망진단서를 뗄 수 있는 가족의 범위가 의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가장 돌봄이 필요할 때는 아플 때인데 의료법 자체에는 보호자에 대한 정의가 없어요. 환자의 정보를 들을 권리 혹은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는 차원에서 직계 가족만 가능하도록 제한하는데, 환자 당사자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이 환자의 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해외의 경우 환자가 지정한 사람이 환자를 대신하여 의료적 처치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송 |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이 |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법적인 가족이지만 가정 폭력이 심하거나, 부모가 자녀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묵살하는 상황일 때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요? 같이 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가족이란 민법에 열거된 대로 누구의 배우자, 직계 혈족, 형제자매와 같이 “명사”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어떤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느냐를 중심으로 “동사”처럼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살고, 함께 돌보고, 함께 양육하고, 함께 부양하는 행위들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모두가 환대받아야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송 |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얘기하면 이를 동성애자 이슈라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가지는 시선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 | 사실이기도 해요. 2006년에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을 중심에 놓고 고민한 것이 맞아요. 가족구성권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퀴어, 장애, 페미니즘 운동의 관점에서 시작된 거예요. 누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돌보고 터전을 가꿀 수 있는 인간이냐, 누구를 만났을 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라는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것은 성소수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주민, 장애인,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등이 가족을 꾸리는 것에 대해 이 사회는 환대하지 않죠. 가족구성권 운동이 성소수자 운동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해요. 가족구성권 운동은 성소수자 운동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집요한 정상성이 있길래 그렇게 생각하는지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적인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출산은 이미 한국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어요. 모든 존재가 환대받을 수 있을 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구성권 운동도 그런 평등을 향한 운동이에요.
송 |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면 자원이 부족해지고, 기존의 가족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등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제도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의사에 맞춰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공공성이 부족한 것이 지금 법적인 가족 자체를 옥죄고 있잖아요. 노동 시장에서 일을 해서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면 장애와 질병이 없어야 해요. 청약에 당첨되어 청약금을 납부하려면 대출을 받든 노동을 하든 돈을 벌어야 해요. 자원을 배분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 자체가 공공적이지 않다는 점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 | 활동 하시면서 희망을 느꼈을 때와 힘이 빠졌을 때를 꼽아주신다면요?
이 | 어차피 큰 희망은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웃음).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발표됐을 때, 이제야 변화가 조금이라도 시작됐구나 싶었어요. 생애주기변동을 가족계획에 포함시키고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계획이 무산돼서 많이 아쉽죠. 2023년에 동성애자 부부의 건강보험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된 항소심 판결 때는 매우 희망적이었죠. 이 사회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생활공동체를 인정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였어요.
송 |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인권」 독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 앞으로 인생에서 가족구성원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그래프로 그려본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떤 사람과 같이 살았고, 어떤 사람을 가족이라고 여겼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고, 향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 자신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가장 이입하기 쉬운 것이 자신의 이야기니까요. 그랬을 때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에서 자신도 벗어나는 순간들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글 | 송시우(작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사진 | 전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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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의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비율은 33.6%로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1인 가구로 나타났다. 부부 등으로 구성된 1세대 가구는 3년 전보다 2.3% 증가했으며,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된 2세대 가구는 같은 기간 3.6% 감소했다. 가족의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대안가족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을 둘러싼 복지 문제에서 뜨거운 화두도 '다양성'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이유나 공동대표와 함께 가족의 의미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송시우 작가,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공동대표
송 |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어떤 단체인가요?
이 |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에 꾸려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 모임’이 전신이에요. 당시 호주제 폐지 이후의 가족 제도에 대한 상상력이 굉장히 필요한 시기였어요. 호주를 중심에 두지 않는 가족 제도에 대한 고민을 했던 거죠. 그러나 호주제 폐지와 동시에 건강가정기본법이 발의되면서 정상가족과 위기가족을 나누고, 이상적인 시민과 비정상적인 시민을 구분하는 가족제도가 계속 유지되었어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가족구성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절반을 넘어섰고, 결혼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증가하게 됐죠. 그렇다면 가족,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2019년에 가족구성권연구소로 전환하게 됐어요.
송 | 본인 소개도 해주세요.
이 | 저는 “정상적인 여성”이라는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남성과 결혼을 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교육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죠.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2012년부터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면서 비혼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살 수만은 없고, 살다 보면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이럴 때 누군가와 일정 기간 혹은 여생을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운동과 맞닿게 된 것 같아요. 2019년 연구소가 개소하면서 합류했어요.
송 | 다소 개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대표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가족 문제’는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 가족으로부터 자립해서 독립한 생활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원가족에게 돌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는 가족이 돌봤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요구가 사라지지 않아요. 저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기 좀 힘든 것 같아요. 은평구에 있는 ‘살림’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중증 질환에 걸렸거나 수술을 받은 조합원이 본인의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일 때 공동으로 모여서 쉬고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지는 공간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요. 저는 국가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 | 가족구성권 운동은 가족과 관련한 많은 이슈 중에서도 법·제도의 측면에 주목하는 시각으로 이해되는데요,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 |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우선시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법·제도에 집중했던 시기는 있었어요. 2019년 연구소가 발족하면서 법 밖의 가족이라고 해서 한국에 존재하는 법률 중 가족이 언급되고 있는 법률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어요. 주택, 복지, 장례, 보상, 의료, 상속 등 인간생활 전반에 관련된 많은 법이 가족을 정의하고, 가족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죠. 법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에서 규정되지 않은 관계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송 | 어떤 법이 바뀌면 좋을까요?
이 | 현실적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 개별법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남녀고용평등법」이에요. 돌봄 휴가와 돌봄 휴직이 제한된 범위의 법적 가족만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우선적으로 변경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카를 돌보는 사람도 있고 친구를 돌보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이 있잖아요? 두 번째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이 개정되면 좋겠어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최근 개정돼서 무연고자의 경우 내가 미리 정해둔 사람이 나의 장례를 주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장례 주관자로 지정할 수 있으려면 의료법이 같이 개정돼야 해요. 장례를 치르려면 사망진단서를 떼야 하는데 사망진단서를 뗄 수 있는 가족의 범위가 의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가장 돌봄이 필요할 때는 아플 때인데 의료법 자체에는 보호자에 대한 정의가 없어요. 환자의 정보를 들을 권리 혹은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는 차원에서 직계 가족만 가능하도록 제한하는데, 환자 당사자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이 환자의 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해외의 경우 환자가 지정한 사람이 환자를 대신하여 의료적 처치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송 |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이 |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법적인 가족이지만 가정 폭력이 심하거나, 부모가 자녀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묵살하는 상황일 때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요? 같이 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가족이란 민법에 열거된 대로 누구의 배우자, 직계 혈족, 형제자매와 같이 “명사”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어떤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느냐를 중심으로 “동사”처럼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살고, 함께 돌보고, 함께 양육하고, 함께 부양하는 행위들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모두가 환대받아야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송 |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얘기하면 이를 동성애자 이슈라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가지는 시선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 | 사실이기도 해요. 2006년에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을 중심에 놓고 고민한 것이 맞아요. 가족구성권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퀴어, 장애, 페미니즘 운동의 관점에서 시작된 거예요. 누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돌보고 터전을 가꿀 수 있는 인간이냐, 누구를 만났을 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라는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것은 성소수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주민, 장애인,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등이 가족을 꾸리는 것에 대해 이 사회는 환대하지 않죠. 가족구성권 운동이 성소수자 운동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해요. 가족구성권 운동은 성소수자 운동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집요한 정상성이 있길래 그렇게 생각하는지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적인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출산은 이미 한국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어요. 모든 존재가 환대받을 수 있을 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구성권 운동도 그런 평등을 향한 운동이에요.
송 |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면 자원이 부족해지고, 기존의 가족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등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제도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의사에 맞춰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공공성이 부족한 것이 지금 법적인 가족 자체를 옥죄고 있잖아요. 노동 시장에서 일을 해서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면 장애와 질병이 없어야 해요. 청약에 당첨되어 청약금을 납부하려면 대출을 받든 노동을 하든 돈을 벌어야 해요. 자원을 배분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 자체가 공공적이지 않다는 점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 | 활동 하시면서 희망을 느꼈을 때와 힘이 빠졌을 때를 꼽아주신다면요?
이 | 어차피 큰 희망은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웃음).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발표됐을 때, 이제야 변화가 조금이라도 시작됐구나 싶었어요. 생애주기변동을 가족계획에 포함시키고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계획이 무산돼서 많이 아쉽죠. 2023년에 동성애자 부부의 건강보험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된 항소심 판결 때는 매우 희망적이었죠. 이 사회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생활공동체를 인정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였어요.
송 |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인권」 독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 앞으로 인생에서 가족구성원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그래프로 그려본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떤 사람과 같이 살았고, 어떤 사람을 가족이라고 여겼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고, 향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 자신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가장 이입하기 쉬운 것이 자신의 이야기니까요. 그랬을 때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에서 자신도 벗어나는 순간들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글 | 송시우(작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사진 | 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