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우리 사회에서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혼인평등이나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현재 법적 논의들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정치-가족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고 유대를 맺고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재생산 정의’를 향한 사회권 실현과 만나야 함을 논의하고자 한다.
▲ 지난 6월 29일 열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 간담회 “친구사이와 혼인평등 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모습. (출처: 친구사이) |
변화를 요구받는 가족제도의 문턱에서 자꾸 소환되는 이름, 성소수자
가족제도의 불평등이라는 문을 열어 젖히고자 할 때, 그 문턱 앞에서 계속 소환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다.
2021년 여성가족부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논의 당시 세상의 모든 가족을 포용하며 가족정책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겠다 했지만, ‘동성 커플’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혐오 세력들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집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현 정부는 이 4차 계획마저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혼인·혈연 중심의 이성애규범적 ‘정상가족’ 관념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비친족가구원(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의 구성원)이 100만명이 넘어서는 시대다.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많은 시민들이 생각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사회가 더 불평등해진다. 이에 대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도, ‘동성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법무부 장관도 공개적으로 생활동반자법 논의조차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혼인평등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앞으로 어떤 논의를 해나가야 할까.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은 동성결합 차별만의 문제가 아니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하다 보면 ‘혼인제도’의 불평등한 현실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불평등한 현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혼인평등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활동을 사례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혼인평등연대’는 성소수자 가족이 겪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 성소수자들이 평등하고 다양하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연대체로 2013년 12월에 결성되었다. 친구사이 외에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함께하고 있다.
친구사이는 한편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도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함께해왔다. 가족구성권 연구 활동을 거듭하면서, 가족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의 양상과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비혼 운동을 하는 여성단체, 장애여성운동 단체, 사회복지 연구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자와 활동가, 전문가들이 모여 10여년 간 대안적 가족정책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족실천’을 가시화하고자 노력했다.
▲ 2009년 9월 19일,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 기획한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 찬란한 유언장」 첫 모임이 열렸다. (출처: 가족구성권연구소) |
2019년에는 가족구성권연구소로 재정비하면서, 우리 사회의 위기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다양한 사회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을 톺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기존 법과 제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권력에 맞서 차별의 현실에 직면하면서도, 상호의존하고 돌보는 삶을 만드는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가 혐오와 낙인을 강화하며 동성혼을 핑계로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때, 더욱 필요한 것은 동성결합에 대한 차별 해소뿐만 아니라 가족제도의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 현 가족제도의 문제를 알려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원가족과의 문제다. 성소수자 청소년이 정체성 문제로 원가족를 떠나면 ‘문제아’로 인식되거나, 트랜스젠더들이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이 시달리고 있는 현실들은 가족 불평등의 문제와 직결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원가족을 중요한 자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이가 있는 한편, 원가족과의 독립을 위한 삶의 계획을 주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우리의 가족제도가 불평등한 사회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을 기반으로 사회보장정책이나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다.
불평등한 가족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친밀한 관계를 구성하며 대안적인 관계를 만들어왔다. 이 다양한 관계들이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이/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빈곤한 사람들과 연대하여 가족제도의 불평등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반차별 운동 속에서 만들어진 연대의 감각
사회적 연대의 현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돌아보았을 때, 초기에는 ‘성적지향’ 등 몇몇 조항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운동이 불붙었지만, 지난 16년의 시간 동안 각각 차별금지 사유만의 논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각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연대와 논의를 통해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의 이슈만으로 인식되었던 것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평등의 원칙’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간 것은 중요하게 평가해야 하는 지점이다.
▲ 2022년 4월 28일,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평등텐트촌 & 단식투쟁” 중 가족연구소 운영위원의 피켓시위 모습. (출처: 가족구성권연구소) |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전신인 ‘반차별공동행동’(2007년 말~2010년)은 각각 다른 기반 속에서 반차별 운동을 해온 이들이 여러 차례 간담회와 포럼을 이어오면서, 차별 담론을 확장하고 감수성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다. 인권운동, 여성운동의 교류 속에서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다시 세우고, 페미니즘과 장애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이 만나 ‘여성’의 범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4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던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복합차별’과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지금 시민들은 기존의 가족질서에 대한 복원이 아니라, 이성애 혼인·혈연을 넘어서 새로운 삶의 안전망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별금지법의 논의는 이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법’을 넘어서 확장되었다. 여성/남성, 이성애/동성애, 비장애인/장애인, 선주민/이주민,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정상가족/취약가족, 생산적인 인구/쓸모 없는 인구 등으로 구분되어 온 위계를 해소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생성하고자 하는 것이며, 불평등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전국 각지의 반차별 운동의 현장에서는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어두운 정세의 전망 속에서도 놓지 않는 것은, 지난 오랜 투쟁 속에서 쌓인 ‘함께 운동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올해 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열렬한 신문광고 모금 참여에서도 이를 확인하였고, 대구 이슬람사원 증축을 위한 연대의 현장에서도 평등을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통해 축적한 반차별의 경험과 감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2021년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30일의 도보행진 #평등길1110 부산 편 영상기록 중에서. https://youtu.be/KbFd_saQKvw |
2023년, 혼인평등 운동과 생활동반자등록법 제정 운동 역시 각계 반차별 운동과 연결하면서 한국 사회에 평등의 원칙을 함께 요구하고, 가족제도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논의해야 한다. 혼인평등 운동이 혼인에 있어 선택권의 문제를 넘어서, 평등을 확장해나가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 어떤 언어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정체성을 넘어 어떻게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가 과제로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제정 운동 내에서도 가족제도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고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30년 역사, 가족제도의 차별에 맞서는 동력되길
1993년 말 ‘초동회’를 시작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올해로 30년을 맞이하고 있다. 2023년에 혼인평등 운동과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가족구성권 운동이 21대 국회 입법 발의를 시작으로 발을 떼었다. 정치권의 낡은 관점에 대항하고 가족제도/정치의 불평등에 맞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면서, 앞으로 이뤄질 변화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혼인평등 운동, 가족구성권 운동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차이와 쟁점을 직면하고 함께 논의해나가야 한다.
이 논의는 사회 재생산의 위기 속에서 함께 살고 유대를 맺어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성혼과 생활동반자 관계를 포함하여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다양한 가족실천이 사회적 권리로 연결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불평등 현실에 대해, 성소수자 운동의 30년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연대를 만들어 낼 것인지 이야기해나가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필자 소개] 이종걸. ‘친구사이’에서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운동을 고민하면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가족구성권 운동이 제도 밖 가족, 스스로 기획하는 가족실천으로, 소수자 운동의 공동체 전략과 연결되기를 바라며 활동하고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 7월 13일,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으로서 첫 모임을 가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장애여성공감, 언니네트워크, 여러 퀴어/페미니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이후 사회복지연구소 물결도 합류했다. 2019년 1월 24일 연구소로 전환하였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familyequalityrights@gmail.com
출처: 혼인평등, 가족구성권, 그리고 차별금지법제정 운동 ‘사이’ - 일다 - https://www.ildaro.com/9721
[연재 소개] 우리 사회에서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혼인평등이나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현재 법적 논의들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정치-가족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고 유대를 맺고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재생산 정의’를 향한 사회권 실현과 만나야 함을 논의하고자 한다.
▲ 지난 6월 29일 열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 간담회 “친구사이와 혼인평등 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모습. (출처: 친구사이)
변화를 요구받는 가족제도의 문턱에서 자꾸 소환되는 이름, 성소수자
가족제도의 불평등이라는 문을 열어 젖히고자 할 때, 그 문턱 앞에서 계속 소환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다.
2021년 여성가족부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논의 당시 세상의 모든 가족을 포용하며 가족정책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겠다 했지만, ‘동성 커플’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혐오 세력들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집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현 정부는 이 4차 계획마저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혼인·혈연 중심의 이성애규범적 ‘정상가족’ 관념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비친족가구원(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의 구성원)이 100만명이 넘어서는 시대다.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많은 시민들이 생각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사회가 더 불평등해진다. 이에 대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도, ‘동성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법무부 장관도 공개적으로 생활동반자법 논의조차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혼인평등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앞으로 어떤 논의를 해나가야 할까.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은 동성결합 차별만의 문제가 아니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하다 보면 ‘혼인제도’의 불평등한 현실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불평등한 현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혼인평등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활동을 사례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혼인평등연대’는 성소수자 가족이 겪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 성소수자들이 평등하고 다양하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연대체로 2013년 12월에 결성되었다. 친구사이 외에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함께하고 있다.
친구사이는 한편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도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함께해왔다. 가족구성권 연구 활동을 거듭하면서, 가족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의 양상과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비혼 운동을 하는 여성단체, 장애여성운동 단체, 사회복지 연구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자와 활동가, 전문가들이 모여 10여년 간 대안적 가족정책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족실천’을 가시화하고자 노력했다.
▲ 2009년 9월 19일,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 기획한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 찬란한 유언장」 첫 모임이 열렸다. (출처: 가족구성권연구소)
2019년에는 가족구성권연구소로 재정비하면서, 우리 사회의 위기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다양한 사회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을 톺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기존 법과 제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권력에 맞서 차별의 현실에 직면하면서도, 상호의존하고 돌보는 삶을 만드는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가 혐오와 낙인을 강화하며 동성혼을 핑계로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때, 더욱 필요한 것은 동성결합에 대한 차별 해소뿐만 아니라 가족제도의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 현 가족제도의 문제를 알려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원가족과의 문제다. 성소수자 청소년이 정체성 문제로 원가족를 떠나면 ‘문제아’로 인식되거나, 트랜스젠더들이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이 시달리고 있는 현실들은 가족 불평등의 문제와 직결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원가족을 중요한 자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이가 있는 한편, 원가족과의 독립을 위한 삶의 계획을 주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우리의 가족제도가 불평등한 사회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을 기반으로 사회보장정책이나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다.
불평등한 가족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친밀한 관계를 구성하며 대안적인 관계를 만들어왔다. 이 다양한 관계들이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이/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빈곤한 사람들과 연대하여 가족제도의 불평등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반차별 운동 속에서 만들어진 연대의 감각
사회적 연대의 현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돌아보았을 때, 초기에는 ‘성적지향’ 등 몇몇 조항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운동이 불붙었지만, 지난 16년의 시간 동안 각각 차별금지 사유만의 논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각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연대와 논의를 통해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의 이슈만으로 인식되었던 것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평등의 원칙’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간 것은 중요하게 평가해야 하는 지점이다.
▲ 2022년 4월 28일,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평등텐트촌 & 단식투쟁” 중 가족연구소 운영위원의 피켓시위 모습. (출처: 가족구성권연구소)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전신인 ‘반차별공동행동’(2007년 말~2010년)은 각각 다른 기반 속에서 반차별 운동을 해온 이들이 여러 차례 간담회와 포럼을 이어오면서, 차별 담론을 확장하고 감수성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다. 인권운동, 여성운동의 교류 속에서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다시 세우고, 페미니즘과 장애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이 만나 ‘여성’의 범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4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던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복합차별’과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지금 시민들은 기존의 가족질서에 대한 복원이 아니라, 이성애 혼인·혈연을 넘어서 새로운 삶의 안전망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별금지법의 논의는 이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법’을 넘어서 확장되었다. 여성/남성, 이성애/동성애, 비장애인/장애인, 선주민/이주민,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정상가족/취약가족, 생산적인 인구/쓸모 없는 인구 등으로 구분되어 온 위계를 해소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생성하고자 하는 것이며, 불평등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전국 각지의 반차별 운동의 현장에서는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어두운 정세의 전망 속에서도 놓지 않는 것은, 지난 오랜 투쟁 속에서 쌓인 ‘함께 운동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올해 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열렬한 신문광고 모금 참여에서도 이를 확인하였고, 대구 이슬람사원 증축을 위한 연대의 현장에서도 평등을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통해 축적한 반차별의 경험과 감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2021년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30일의 도보행진 #평등길1110 부산 편 영상기록 중에서. https://youtu.be/KbFd_saQKvw
2023년, 혼인평등 운동과 생활동반자등록법 제정 운동 역시 각계 반차별 운동과 연결하면서 한국 사회에 평등의 원칙을 함께 요구하고, 가족제도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논의해야 한다. 혼인평등 운동이 혼인에 있어 선택권의 문제를 넘어서, 평등을 확장해나가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 어떤 언어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정체성을 넘어 어떻게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가 과제로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제정 운동 내에서도 가족제도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고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30년 역사, 가족제도의 차별에 맞서는 동력되길
1993년 말 ‘초동회’를 시작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올해로 30년을 맞이하고 있다. 2023년에 혼인평등 운동과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가족구성권 운동이 21대 국회 입법 발의를 시작으로 발을 떼었다. 정치권의 낡은 관점에 대항하고 가족제도/정치의 불평등에 맞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면서, 앞으로 이뤄질 변화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혼인평등 운동, 가족구성권 운동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차이와 쟁점을 직면하고 함께 논의해나가야 한다.
이 논의는 사회 재생산의 위기 속에서 함께 살고 유대를 맺어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성혼과 생활동반자 관계를 포함하여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다양한 가족실천이 사회적 권리로 연결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불평등 현실에 대해, 성소수자 운동의 30년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연대를 만들어 낼 것인지 이야기해나가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필자 소개] 이종걸. ‘친구사이’에서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운동을 고민하면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가족구성권 운동이 제도 밖 가족, 스스로 기획하는 가족실천으로, 소수자 운동의 공동체 전략과 연결되기를 바라며 활동하고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 7월 13일,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으로서 첫 모임을 가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장애여성공감, 언니네트워크, 여러 퀴어/페미니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이후 사회복지연구소 물결도 합류했다. 2019년 1월 24일 연구소로 전환하였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familyequalityrigh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