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 2023년 10월 월례포럼 <가족각본> (김지혜)
일시: 2023년 10월 13일 저녁 6시
장소: 커뮤니티센터 늘봄
가족구성권연구소 10월의 월례포럼은 『가족각본』의 저자 김지혜 씨와의 북토크였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타리가 사회를 맡았고, 출판사인 창비의 담당 편집자, 연구소 구성원과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등 열댓 명이 참가한 포럼은 커뮤니티센터 늘봄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의 집필 계기와 주안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각본』은 이전에 발간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대중적 성공을 거둔 데 비해 책에서 다룬 차별금지법 제정은 동성애/동성혼 이슈로 인해 계속 불발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성소수자 의제를 고립된 이슈로 만들지 않으며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다른 의제들이나 가족구성권과의 연결점을 이해시키고 싶었고,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며느리라니"라는 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의 가족제도 안에서 ‘며느리'의 위치는 굉장히 독특한데, 한국적인 맥락에서 여성이 지닌 지위의 독특성에 대해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는 오래전부터 가족 내 관계이기보단 직위와 직책에 가까웠다. 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며느리의 도리를 ‘친척을 아끼고 섬기는’ 것부터 집안 제사, 손님 대접, 가사노동, 살림살이에서의 근검절약 등으로 설명하는 데서 잘 나온다. 집안의 중대사를 총괄 운영하는 책무에 비해 직위는 낮다. 며느리가 남편의 가족을 부르는 호칭과 남편이 아내의 가족을 부르는 호칭의 비대칭성에서 드러나듯,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는 위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호칭 비대칭성은 점차 비판과 반성을 거치며 희미해졌지만, ‘며느리의 도리’로 여겨지는 많은 역할과 기능은 유효하다. 며느리가 가족 위계와 질서를 받아들이고 계승하며 자식을 낳아 대를 이음으로써 가족제도를 유지하는 핵심 존재인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여전히 집안 간 결합이고, 결혼과 출산은 효도의 일부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또한 가족제도를 위한 기능으로 읽힌다. 가족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는 금기시되고, 성과 관련된 여성의 일상은 가족의 단속을 받으며, 임신한 청소년은 숨겨야 할 가족의 수치가 된다. 며느리가 아닌 엄마는 승인된 가족 질서에서 벗어난 출산/출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이렇듯, 가족제도는 양성 규범 안에서 성차별적으로 작동하고, 며느리는 이 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역할이자 기능이다. 그렇다면 ‘남자 며느리’는 이원화된 젠더 규범이 전제된 결혼과 가족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협이 된다.
‘며느리'에서 출발한 저자의 질문은 가족 각본이 누구를/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가족 각본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역사를 많이 살펴보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질문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가족이 ‘제도'일 수 있다는 의심을 일으키고, 제도와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얘기하고자 했다. 이야기 방식 중 하나는 헌법의 용어와 판례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저자의 질문과 서술 방식은 포럼 참가자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 지닌 힘과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 세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과 감탄이 연이어 나왔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저자는 현재의 가족 체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짚었다. 어떤 사람들이란, 많이 배우고 물려줄 게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기득권층의 지식과 재산을 이어가는 데 가족은 가장 공식적이고 안전한 체제다. 가족제도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제도의 변화가 사회의 불평등 해소로 이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근래 가족제도의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는 생활동반자등록법은 민법상 가족에게만 허락되던 다양한 권리와 자격을 당사자 간 계약 관계로 넓힘으로써 현행 가족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지만, 특권의 세습이라는 가족 기능에 균열을 내지는 못한다. 내가 지정한 1인이나 동성혼 법제화 또한 마찬가지다. 제한된 자격으로 부여되는 가족을 권리로 전환하며 가족 범주를 넓히는 법 제정뿐만 아니라, 특권이 세습되는 통로로서의 가족제도를 해소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포럼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는 ‘가족각본'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힘에 대해서도 소감을 나눴다. 가족을 각본의 개념으로 다루는 것은 가족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연합이 아닌 제도로 작동하는가를 표현하는 핵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시작인 ‘며느리가 남자면 어떠냐?’는 질문 자체로 정상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족의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며느리라는 기능 및 재생산 정치 개념과 연결하는 데서 출발해, 가족의 실패와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짚은 뒤 가족각본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제안하며 마치는 책의 흐름은 굉장히 영리하다.
책이 가족각본을 넘어 가족이란 제도가 불평등과 연결되는 지점, 가족의 자본주의적 속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어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자와 참가자 모두 아쉬움을 표했다. 이는 시설화와 같은 가족 관련 사회복지제도를 더 깊이 다루지 못했다는 저자의 아쉬움과도 이어진다. 현장에서도 부양이나 돌봄 이슈가 대중적으로 가 닿기 어렵고, 제도가 나아진다 해도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나의 의제'가 되기엔 아직 벽이 공고하다는 소감이 이어졌다.
“현대사회의 계급 재생산은 외형적으로는 합법적이고 공정하다. 엘리트 계층이 끼리끼리 만나 중산층을 형성하고, 축적된 부와 네트워크를 통해 고소득으로 진입하는 교육 기회를 독점하며, 이로써 자녀에게 계층을 세습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가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 그저 최선의 선택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양육자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는 계층의 세습으로 이어진다. 가족제도가 어떠하기에 그럴까?” - 『가족각본』 6장 「가족각본은 불평등하다」 159쪽에서 발췌.
책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건넨 질문들은 많은 사람에게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가족’을 제도이자 장치로 의심하며 생각을 확장하는 출발점이 된다. 던져진 돌이 끊이지 않는 물수제비가 될까? 돌들이 모여 가족제도가 외면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돌다리가 언젠가 공고한 가족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벽을 뚫는 진입로가 될까? 저자가 아쉬움을 표한 빈 곳을 채우며 돌을 모으고 다리를 만드는 건 독자이자 동료인 우리의 활동이 될 테다.
언제나 ‘어떻게'를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게 운동이다. 그래서 이 막막함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10월의 월례포럼은 이를 확인하고 다시금 다짐하며 나아갈 힘을 주는 자리였다. “활동은 정말 곳곳에서 이뤄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의제가 글로, 말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 나갈 미래를 기대한다. 그 글과 말을 보태고 이끌어 가는 곳에 가족구성권연구소 또한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작성: 한솔 연구위원
활동후기: 2023년 10월 월례포럼 <가족각본> (김지혜)
일시: 2023년 10월 13일 저녁 6시
장소: 커뮤니티센터 늘봄
가족구성권연구소 10월의 월례포럼은 『가족각본』의 저자 김지혜 씨와의 북토크였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타리가 사회를 맡았고, 출판사인 창비의 담당 편집자, 연구소 구성원과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등 열댓 명이 참가한 포럼은 커뮤니티센터 늘봄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의 집필 계기와 주안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각본』은 이전에 발간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대중적 성공을 거둔 데 비해 책에서 다룬 차별금지법 제정은 동성애/동성혼 이슈로 인해 계속 불발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성소수자 의제를 고립된 이슈로 만들지 않으며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다른 의제들이나 가족구성권과의 연결점을 이해시키고 싶었고,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며느리라니"라는 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의 가족제도 안에서 ‘며느리'의 위치는 굉장히 독특한데, 한국적인 맥락에서 여성이 지닌 지위의 독특성에 대해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는 오래전부터 가족 내 관계이기보단 직위와 직책에 가까웠다. 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며느리의 도리를 ‘친척을 아끼고 섬기는’ 것부터 집안 제사, 손님 대접, 가사노동, 살림살이에서의 근검절약 등으로 설명하는 데서 잘 나온다. 집안의 중대사를 총괄 운영하는 책무에 비해 직위는 낮다. 며느리가 남편의 가족을 부르는 호칭과 남편이 아내의 가족을 부르는 호칭의 비대칭성에서 드러나듯,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는 위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호칭 비대칭성은 점차 비판과 반성을 거치며 희미해졌지만, ‘며느리의 도리’로 여겨지는 많은 역할과 기능은 유효하다. 며느리가 가족 위계와 질서를 받아들이고 계승하며 자식을 낳아 대를 이음으로써 가족제도를 유지하는 핵심 존재인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여전히 집안 간 결합이고, 결혼과 출산은 효도의 일부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또한 가족제도를 위한 기능으로 읽힌다. 가족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는 금기시되고, 성과 관련된 여성의 일상은 가족의 단속을 받으며, 임신한 청소년은 숨겨야 할 가족의 수치가 된다. 며느리가 아닌 엄마는 승인된 가족 질서에서 벗어난 출산/출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이렇듯, 가족제도는 양성 규범 안에서 성차별적으로 작동하고, 며느리는 이 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역할이자 기능이다. 그렇다면 ‘남자 며느리’는 이원화된 젠더 규범이 전제된 결혼과 가족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협이 된다.
‘며느리'에서 출발한 저자의 질문은 가족 각본이 누구를/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가족 각본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역사를 많이 살펴보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질문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가족이 ‘제도'일 수 있다는 의심을 일으키고, 제도와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얘기하고자 했다. 이야기 방식 중 하나는 헌법의 용어와 판례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저자의 질문과 서술 방식은 포럼 참가자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 지닌 힘과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 세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과 감탄이 연이어 나왔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저자는 현재의 가족 체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짚었다. 어떤 사람들이란, 많이 배우고 물려줄 게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기득권층의 지식과 재산을 이어가는 데 가족은 가장 공식적이고 안전한 체제다. 가족제도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제도의 변화가 사회의 불평등 해소로 이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근래 가족제도의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는 생활동반자등록법은 민법상 가족에게만 허락되던 다양한 권리와 자격을 당사자 간 계약 관계로 넓힘으로써 현행 가족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지만, 특권의 세습이라는 가족 기능에 균열을 내지는 못한다. 내가 지정한 1인이나 동성혼 법제화 또한 마찬가지다. 제한된 자격으로 부여되는 가족을 권리로 전환하며 가족 범주를 넓히는 법 제정뿐만 아니라, 특권이 세습되는 통로로서의 가족제도를 해소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포럼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는 ‘가족각본'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힘에 대해서도 소감을 나눴다. 가족을 각본의 개념으로 다루는 것은 가족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연합이 아닌 제도로 작동하는가를 표현하는 핵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시작인 ‘며느리가 남자면 어떠냐?’는 질문 자체로 정상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족의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며느리라는 기능 및 재생산 정치 개념과 연결하는 데서 출발해, 가족의 실패와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짚은 뒤 가족각본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제안하며 마치는 책의 흐름은 굉장히 영리하다.
책이 가족각본을 넘어 가족이란 제도가 불평등과 연결되는 지점, 가족의 자본주의적 속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어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자와 참가자 모두 아쉬움을 표했다. 이는 시설화와 같은 가족 관련 사회복지제도를 더 깊이 다루지 못했다는 저자의 아쉬움과도 이어진다. 현장에서도 부양이나 돌봄 이슈가 대중적으로 가 닿기 어렵고, 제도가 나아진다 해도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나의 의제'가 되기엔 아직 벽이 공고하다는 소감이 이어졌다.
“현대사회의 계급 재생산은 외형적으로는 합법적이고 공정하다. 엘리트 계층이 끼리끼리 만나 중산층을 형성하고, 축적된 부와 네트워크를 통해 고소득으로 진입하는 교육 기회를 독점하며, 이로써 자녀에게 계층을 세습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가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 그저 최선의 선택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양육자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는 계층의 세습으로 이어진다. 가족제도가 어떠하기에 그럴까?” - 『가족각본』 6장 「가족각본은 불평등하다」 159쪽에서 발췌.
책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건넨 질문들은 많은 사람에게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가족’을 제도이자 장치로 의심하며 생각을 확장하는 출발점이 된다. 던져진 돌이 끊이지 않는 물수제비가 될까? 돌들이 모여 가족제도가 외면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돌다리가 언젠가 공고한 가족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벽을 뚫는 진입로가 될까? 저자가 아쉬움을 표한 빈 곳을 채우며 돌을 모으고 다리를 만드는 건 독자이자 동료인 우리의 활동이 될 테다.
언제나 ‘어떻게'를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게 운동이다. 그래서 이 막막함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10월의 월례포럼은 이를 확인하고 다시금 다짐하며 나아갈 힘을 주는 자리였다. “활동은 정말 곳곳에서 이뤄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의제가 글로, 말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 나갈 미래를 기대한다. 그 글과 말을 보태고 이끌어 가는 곳에 가족구성권연구소 또한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작성: 한솔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