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우리 사회에서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혼인평등이나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현재 법적 논의들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정치-가족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고 유대를 맺고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재생산 정의’를 향한 사회권 실현과 만나야 함을 논의하고자 한다.
“모두의 결혼”? 혼인평등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결혼은 한번도 모두를 위한 제도인 적이 없다
혼인평등 운동에서 권리의 구호로 이야기되는 “모두의 결혼”에 대해,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러한 구호는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친밀한 관계에 대한 법적 권리를 쟁취하길 원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을 성소수자가 겪는 불평등의 핵심으로 지목한다는 점에 대해서다.
▲ 출처: 언니네트워크 비혼아카이브
2000년 네덜란드 의회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적 결혼으로 인정한 후, 2023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의 물결이 이어졌다. 지금 한국의 20대, 30대 성소수자들은 친밀한 유대관계에 대해, 서로를 돌보고 위기의 순간에 개입하고 삶의 안정성을 마련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동성결혼을 통한 ‘배우자로서의 권리’로 획득하는 서사에 익숙한 세대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뿐 아니라 SNS를 통해서 외국인과 혼인하거나, 내국인 성소수자 커플이 해외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이 꽤 많이 눈에 띄고 있다. 국제적으로 동성 배우자의 권리가 인정되고, 한국의 지체된 상황이 더욱더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해외에서라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결혼을 해서 한국사회에서 권리의 충돌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진행하고 스냅사진을 찍고, 결혼식을 하고 동성혼이 인정되는 나라로 혼인신고 겸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은 적극적인 권리투쟁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동성 간 친밀한 유대에 대한 어떠한 법적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주변인의 인정을 받고 공식적인 관계의 승인을 통해 삶의 안정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개인들의 노력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혼이 “이성애자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퀴어인)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수사로 반복해서 설명될 때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차별의 감각을 ‘운동의 모델’로 만들 것이냐에 대해서는 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산업화 과정에서 포장되고 낭만화된 가족 정상성
결혼은 한번도 모두를 위한 제도인 적이 없다. 결혼제도는 ‘어떤 관계를 국가가 보호하고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지’와 같은 시민의 '자격'과 관련 있다.
다양한 친밀성과 유대관계에 대한 차별은 국가의 발전주의적 경제관과 연관되어 있으며, 출생을 국가의 산업경쟁력과 관련시키는 인구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일할 수 있는 몸’의 정상성은 생산성을 중심으로 정의되며 돌봄을 수행하는 몸,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몸, 나이 든 몸, 장애를 가진 몸, 질병 가진 몸을 비생산적인 몸으로 위계적으로 배치한다. 비생산적인 몸을 가진 존재들은 애초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출산, 육아, 돌봄으로 인한 휴직 후 복귀의 어려움을 겪거나, 장애인 최저임금 배제 등의 차별적인 정책으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머무르게 된다. 이로써 불평등이 심화되고, 관계를 맺을 자원 자체를 박탈당하는 차별을 경험한다.
국가는 이념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피임술의 보급이나, 재생산과 분리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교육 등 가족계획사업의 매우 구체적인 행정을 통해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그 사랑의 결실로 얻은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한다”는 새로운 가족 정상성을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 왔다. (조은주, 『인구와 통치』, 창비, 2018)
성소수자의 성적 실천에 대한 낙인, 친밀한 유대에 대한 차별은 단지 이성애 대 동성애의 구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인구정책상 ‘정상성’ 배치에 의한 젠더, 계급, 장애, 인종 등 다양하고 복잡한 차별이다.
시민적 권리가 ‘이성애자’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로 호명될 때, 오히려 성소수자 내부의 차이와 위계는 비가시화된다.
‘가사 육아의 젠더화’ 해소하지 않고 ‘외주화’하는 한국
결혼 제도가 호명하는 권리의 당사자는 누구?
「시사인」이 올해 발표한 2030 연애·결혼 리포트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이나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질문에 성별간 응답이 상반되었다. 특히 20대에서는 남성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 31.5%에 비해, 여성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8.3%로 1/3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일한 조사에서 ‘결혼을 하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질문에 대해 20대 여성 47.5%가, 30대 여성 50.4%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녀가 생기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문항에 대해서 20대 남성은 37.3%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20대 여성은 두 배에 가까운 68.7%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시사인, 2023-03-15))
▲ 출처: 시사인,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2023년 3월 15일자 보도 중에서 연령/성별 결혼 관련 인식 표.
주 돌봄자는 돌봄으로 인해 임금노동을 중단하거나, 노동의 과정 중에도 돌봄의 요구를 계속해서 받아 수행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노동의 시간이 분절되는 주 돌봄자의 고용은 ‘비용’으로 여겨지고, 고용조건은 불안정해진다.
돌봄 책임이 가족에게 전적으로 전가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가족’ 안에서도 책임은 젠더화되어 있다. ‘돌봄의 젠더화’가 젠더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감각은 더이상 결혼제도 안에서 생애전망을 찾을 수 없다는 여성들의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극심한 저출생에 대한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육아, 가사, 가족 돌봄, 간병 등 재생산노동을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온 것에 익숙한 사회는 ‘싼 값’으로 돌봄을 외주화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부터 찾아보자는 태도를 취한다.
국가는 바로 그 돌봄의 젠더화, 낮은 가치 평가가 돌봄의 당사자로 호명되었던 여성을 그 자리에서 이탈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육아, 가사노동을 외주화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책임을 여전히 가족에게 지우고 있다. 이걸 보면 현재 한국의 저출생 해결의 패러다임 속에서 출산하고 양육할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상상되는 것, 결혼의 당사자로 상상되는 것이 매우 특정한 계급적 위치를 전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제도 안에, 가족 안에 머물기를 강제하는 사회
결혼 바깥의 삶을 생존 불가능한 삶으로 만드는 ‘가족복지’ 체계
이전부터 국가는 젠더 불평등이 심화되어 그것의 변화를 촉구하는 순간마다. 돌봄의 젠더화를 이주민을 통한 돌봄 노동의 외주화로 해결해왔다. 한국 정부가 1992년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래로,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결혼이민자는 166,711명에 달하고 이중 여성이 135,019명으로 80.9%의 비율을 차지한다.
2000년대 중반 결혼이민에 대한 연구에서 한국남성들은 “배우자가 순종적이고,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국제결혼을 택한 것으로 나왔다. 결국은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이라는 재생산노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변동을 ‘결혼이민’이라는 또다른 돌봄의 젠더화, 돌봄의 외주화로 해결하려고 한 것임을 보여준다. (조경진, “한국의 돌봄공백과 결혼이주여성이 수행하는 노인돌봄에 대한 사례연구”, 가족과 문화 제29집 2호 pp.1∼39, 2017)
그 ‘결혼이민’을 통한 이주민 여성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혼인관계의 유지와 진정성을 심사 받을 때, 다툼의 결과로 남편이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거나 비자 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다. 때문에 이주민 여성은 가족 내부의 부당함과 부정의를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기도 한다.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하면 이혼해도 체류자격이 유지되지만, “한국인의 이혼 사유 대부분에 해당하는 성격 차이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정불화는 곧 체류 불안…미등록 체류자 되기도, 단비뉴스, 2022-06-02)
결국 한국의 ‘돌봄 부정의’를 감당해온 이주민 여성에게, 가족을 떠나서 한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 새로운 친밀성과 유대의 관계를 만들 권리, 아내도 엄마도 아닌 개인으로서 생존의 기반을 보장받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국경, 인종, 계급, 젠더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을 따라 결혼 제도의 내부에서도 배우자의 지위와 시민으로서 권리는 차별적으로 구성된다.
▲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의 미래, 도시 서울을 상상하는 [2019 N개의 공론장]” 중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주최한 「법 밖의 가족이 겪는 차별의 긴 목록」 (가족구성권연구소 제공)
여성/성소수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결혼 제도가 강제하는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 가족 안에서 딸-아내-어머니라는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설정되는 권리 담론이 가족 내부의 불평등을 비가시화하고, 결혼 바깥의 삶을 생존 불가능한 삶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는 단지 결혼 제도가 허용되지 않아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임시적 운동이 아니다.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과 돌봄의 외주화에 기대어온 결혼 제도의 문제를 단순히 ‘이성애자의 곤란’으로 치부할 때, 돌봄의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그 이성애가족 정상성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위계를 형성하고, 성소수자를 결혼 제도에서 배제하는 바로 그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가족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가족복지 체계는 결혼 밖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가족 안에, 결혼제도 안에 머무르기를 강제한다. 이 감각이 소수자의 친밀성과 유대에 대한 차별과 연결될 때, 우리는 결혼 제도를 ‘문제’로 여기는 ‘모두’와 연루될 수 있다. 분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보다는 분배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는 운동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나기. 성별이분법,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가족제도와 그 가족을 기반으로 생애 전반을 구획해내는 사회문화제도의 변화를 위해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녀, 설치고 말하고 행동하라』(공저)가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 7월 13일,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으로서 첫 모임을 가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장애여성공감, 언니네트워크, 여러 퀴어/페미니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이후 사회복지연구소 물결도 합류했다. 2019년 1월 24일 연구소로 전환하였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일다(2023.07.21.) 🔗 원문 보기
[연재 소개] 우리 사회에서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혼인평등이나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현재 법적 논의들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정치-가족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고 유대를 맺고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재생산 정의’를 향한 사회권 실현과 만나야 함을 논의하고자 한다.
“모두의 결혼”? 혼인평등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결혼은 한번도 모두를 위한 제도인 적이 없다
혼인평등 운동에서 권리의 구호로 이야기되는 “모두의 결혼”에 대해,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러한 구호는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친밀한 관계에 대한 법적 권리를 쟁취하길 원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을 성소수자가 겪는 불평등의 핵심으로 지목한다는 점에 대해서다.
▲ 출처: 언니네트워크 비혼아카이브
2000년 네덜란드 의회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적 결혼으로 인정한 후, 2023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의 물결이 이어졌다. 지금 한국의 20대, 30대 성소수자들은 친밀한 유대관계에 대해, 서로를 돌보고 위기의 순간에 개입하고 삶의 안정성을 마련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동성결혼을 통한 ‘배우자로서의 권리’로 획득하는 서사에 익숙한 세대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뿐 아니라 SNS를 통해서 외국인과 혼인하거나, 내국인 성소수자 커플이 해외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이 꽤 많이 눈에 띄고 있다. 국제적으로 동성 배우자의 권리가 인정되고, 한국의 지체된 상황이 더욱더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해외에서라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결혼을 해서 한국사회에서 권리의 충돌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진행하고 스냅사진을 찍고, 결혼식을 하고 동성혼이 인정되는 나라로 혼인신고 겸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은 적극적인 권리투쟁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동성 간 친밀한 유대에 대한 어떠한 법적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주변인의 인정을 받고 공식적인 관계의 승인을 통해 삶의 안정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개인들의 노력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혼이 “이성애자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퀴어인)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수사로 반복해서 설명될 때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차별의 감각을 ‘운동의 모델’로 만들 것이냐에 대해서는 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산업화 과정에서 포장되고 낭만화된 가족 정상성
결혼은 한번도 모두를 위한 제도인 적이 없다. 결혼제도는 ‘어떤 관계를 국가가 보호하고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지’와 같은 시민의 '자격'과 관련 있다.
다양한 친밀성과 유대관계에 대한 차별은 국가의 발전주의적 경제관과 연관되어 있으며, 출생을 국가의 산업경쟁력과 관련시키는 인구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일할 수 있는 몸’의 정상성은 생산성을 중심으로 정의되며 돌봄을 수행하는 몸,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몸, 나이 든 몸, 장애를 가진 몸, 질병 가진 몸을 비생산적인 몸으로 위계적으로 배치한다. 비생산적인 몸을 가진 존재들은 애초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출산, 육아, 돌봄으로 인한 휴직 후 복귀의 어려움을 겪거나, 장애인 최저임금 배제 등의 차별적인 정책으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머무르게 된다. 이로써 불평등이 심화되고, 관계를 맺을 자원 자체를 박탈당하는 차별을 경험한다.
국가는 이념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피임술의 보급이나, 재생산과 분리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교육 등 가족계획사업의 매우 구체적인 행정을 통해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그 사랑의 결실로 얻은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한다”는 새로운 가족 정상성을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 왔다. (조은주, 『인구와 통치』, 창비, 2018)
성소수자의 성적 실천에 대한 낙인, 친밀한 유대에 대한 차별은 단지 이성애 대 동성애의 구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인구정책상 ‘정상성’ 배치에 의한 젠더, 계급, 장애, 인종 등 다양하고 복잡한 차별이다.
시민적 권리가 ‘이성애자’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로 호명될 때, 오히려 성소수자 내부의 차이와 위계는 비가시화된다.
‘가사 육아의 젠더화’ 해소하지 않고 ‘외주화’하는 한국
결혼 제도가 호명하는 권리의 당사자는 누구?
「시사인」이 올해 발표한 2030 연애·결혼 리포트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이나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질문에 성별간 응답이 상반되었다. 특히 20대에서는 남성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 31.5%에 비해, 여성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8.3%로 1/3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일한 조사에서 ‘결혼을 하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질문에 대해 20대 여성 47.5%가, 30대 여성 50.4%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녀가 생기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문항에 대해서 20대 남성은 37.3%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20대 여성은 두 배에 가까운 68.7%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시사인, 2023-03-15))
▲ 출처: 시사인,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2023년 3월 15일자 보도 중에서 연령/성별 결혼 관련 인식 표.
주 돌봄자는 돌봄으로 인해 임금노동을 중단하거나, 노동의 과정 중에도 돌봄의 요구를 계속해서 받아 수행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노동의 시간이 분절되는 주 돌봄자의 고용은 ‘비용’으로 여겨지고, 고용조건은 불안정해진다.
돌봄 책임이 가족에게 전적으로 전가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가족’ 안에서도 책임은 젠더화되어 있다. ‘돌봄의 젠더화’가 젠더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감각은 더이상 결혼제도 안에서 생애전망을 찾을 수 없다는 여성들의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극심한 저출생에 대한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육아, 가사, 가족 돌봄, 간병 등 재생산노동을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온 것에 익숙한 사회는 ‘싼 값’으로 돌봄을 외주화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부터 찾아보자는 태도를 취한다.
국가는 바로 그 돌봄의 젠더화, 낮은 가치 평가가 돌봄의 당사자로 호명되었던 여성을 그 자리에서 이탈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육아, 가사노동을 외주화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책임을 여전히 가족에게 지우고 있다. 이걸 보면 현재 한국의 저출생 해결의 패러다임 속에서 출산하고 양육할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상상되는 것, 결혼의 당사자로 상상되는 것이 매우 특정한 계급적 위치를 전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제도 안에, 가족 안에 머물기를 강제하는 사회
결혼 바깥의 삶을 생존 불가능한 삶으로 만드는 ‘가족복지’ 체계
이전부터 국가는 젠더 불평등이 심화되어 그것의 변화를 촉구하는 순간마다. 돌봄의 젠더화를 이주민을 통한 돌봄 노동의 외주화로 해결해왔다. 한국 정부가 1992년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래로,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결혼이민자는 166,711명에 달하고 이중 여성이 135,019명으로 80.9%의 비율을 차지한다.
2000년대 중반 결혼이민에 대한 연구에서 한국남성들은 “배우자가 순종적이고,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국제결혼을 택한 것으로 나왔다. 결국은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이라는 재생산노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변동을 ‘결혼이민’이라는 또다른 돌봄의 젠더화, 돌봄의 외주화로 해결하려고 한 것임을 보여준다. (조경진, “한국의 돌봄공백과 결혼이주여성이 수행하는 노인돌봄에 대한 사례연구”, 가족과 문화 제29집 2호 pp.1∼39, 2017)
그 ‘결혼이민’을 통한 이주민 여성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혼인관계의 유지와 진정성을 심사 받을 때, 다툼의 결과로 남편이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거나 비자 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다. 때문에 이주민 여성은 가족 내부의 부당함과 부정의를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기도 한다.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하면 이혼해도 체류자격이 유지되지만, “한국인의 이혼 사유 대부분에 해당하는 성격 차이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정불화는 곧 체류 불안…미등록 체류자 되기도, 단비뉴스, 2022-06-02)
결국 한국의 ‘돌봄 부정의’를 감당해온 이주민 여성에게, 가족을 떠나서 한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 새로운 친밀성과 유대의 관계를 만들 권리, 아내도 엄마도 아닌 개인으로서 생존의 기반을 보장받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국경, 인종, 계급, 젠더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을 따라 결혼 제도의 내부에서도 배우자의 지위와 시민으로서 권리는 차별적으로 구성된다.
▲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의 미래, 도시 서울을 상상하는 [2019 N개의 공론장]” 중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주최한 「법 밖의 가족이 겪는 차별의 긴 목록」 (가족구성권연구소 제공)
여성/성소수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결혼 제도가 강제하는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 가족 안에서 딸-아내-어머니라는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설정되는 권리 담론이 가족 내부의 불평등을 비가시화하고, 결혼 바깥의 삶을 생존 불가능한 삶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는 단지 결혼 제도가 허용되지 않아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임시적 운동이 아니다.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과 돌봄의 외주화에 기대어온 결혼 제도의 문제를 단순히 ‘이성애자의 곤란’으로 치부할 때, 돌봄의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그 이성애가족 정상성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위계를 형성하고, 성소수자를 결혼 제도에서 배제하는 바로 그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가족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가족복지 체계는 결혼 밖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가족 안에, 결혼제도 안에 머무르기를 강제한다. 이 감각이 소수자의 친밀성과 유대에 대한 차별과 연결될 때, 우리는 결혼 제도를 ‘문제’로 여기는 ‘모두’와 연루될 수 있다. 분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보다는 분배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는 운동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나기. 성별이분법,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가족제도와 그 가족을 기반으로 생애 전반을 구획해내는 사회문화제도의 변화를 위해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녀, 설치고 말하고 행동하라』(공저)가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 7월 13일,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으로서 첫 모임을 가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장애여성공감, 언니네트워크, 여러 퀴어/페미니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이후 사회복지연구소 물결도 합류했다. 2019년 1월 24일 연구소로 전환하였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일다(2023.07.21.) 🔗 원문 보기